탄소중립 절벽 앞에서 '30년 규제전쟁' 마지막전투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2.06.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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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그린볼루션 시대(1회) 上

편집자주 [창간기획]그린볼루션(GreenVolution, Green+Evolution), 친환경 대전환의 시대다. 화석연료가 지배하던 세계 경제가 저탄소 청정 에너지 기반으로 바뀌면서 진화 수준의 산업 변화가 전개되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가는 이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이 좌우될 전망이다. 성공적인 그린볼루션을 위해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를 점검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탄소중립 기술 개발해도 규제·규제...尹정부 "신발 속 돌멩이 빼주겠다"지만...
100년 탄소시대가 저물고 탄소중립의 시대가 열린다. 열리기도 전에 기술 대전환의 발목을 잡는게 바로 켜켜이 쌓인 규제다. 이전 정부도 연전연패한 규제와의 싸움에 새 정부가 어떻게 임할지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큰 관심이 쏠린다. 탄소중립 기술 실증에서부터 현장 적용에까지 불필요한 규제의 걸림돌을 어떻게 빠르고 적절하게 해소해줄까. 탄소중립 그린비즈니스 대전환 주도권 쟁탈전은 이미 시작됐다.

◇연구부터 실증, 시장 적용까지..규제로 시작해 규제로 끝나서야



탄소중립 절벽 앞에서 '30년 규제전쟁' 마지막전투


탄소중립 그린 비즈니스 시장은 기존 내연기관 주도 시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자원이 화석연료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미래형 원자력발전 등 탄소중립적 자원으로 대체되고, 이 과정에서 수소와 재생플라스틱 등이 중간재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산업구조가 자원과 기술, 시장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같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자원이 없고 내수시장도 작다.

오로지 집중해야 하는 것은 R&D(연구개발)를 통한 시장 선도다. 연구에서부터 실증, 시장 적용에서까지 아무 규제 없이 쾌속으로 질주해도 태양광과 풍력이 풍부한 자원부국, 내수시장이 탄탄한 선진국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 탄소중립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고 있는 선진국들의 조력자로 선택을 받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이 주도하겠지만 정부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탄소중립 비즈니스를 막 시작하는 기업들은 규제를 무엇보다 큰 걸림돌로 꼽는다. 수소연료전지 실증이 안전규제에 걸려 전국을 떠돌며 테스트해야 했던 얘기나, 태양광 및 연료전지로 발전하는 시스템을 주유소에 구축하고도 발전된 전력 판매가 규제에 걸려 제대로 설비를 돌리지 못한 사연 등은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손꼽힌다.

소소한 규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할 수 있지만 문제는 더 큰 규제들이다. 에너지믹스에서 기저발전 역할을 해야 할 원전은 산업 자체가 주홍글씨가 새겨지며 정치적 저격을 당했다. 더 큰 틀에서 보면 현장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도 폭넓은 규제로 작용한다. 속도에 얽매이다보니 보다 다양한 탄소중립 수단을 도입하는데 큰 족쇄가 된다는게 현장의 목소리다.

◇규제개혁과 30년 싸움, 탄소중립 앞두곤 이길까


탄소중립 그린 비즈니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새 정부도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의 신발 속 돌멩이를 빼주겠다"고 했다. 편하게 달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다.

그럼에도 현장은 낙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표한 '새 정부 규제개혁 정책과제 전문가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전문가 200명 중 67.5%가 "새 정부에서 기업규제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규제개혁 성과가 좋았던 역대 정부를 묻는 질문에는 40.0%가 "정부 별 차이 없이 모두 성과가 저조했다"는 부정적 답변을 내놨다.

1년여 전인 2021년 6월 규제혁신 만족도조사를 보면 기대감은 더 바닥을 친다. 역대 어느 정부 규제혁신이 가장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8%가 "큰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다 못했다는 거다. '대부분이 기대하지만 대부분이 실망하는'게 바로 기업규제 혁신이라는 뜻이다. 새 정부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접근해서는 현장의 실망감만 키울 뿐이다. 제대로 준비해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탄소중립에서 실기하면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재계는 상황의 중대성에 걸맞은 규제 개혁 전담조직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질적인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마련, 인센티브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거다. 원자력발전소 수명 연장문제나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등 탄소중립 전략 수정안 등 어느 하나 가벼운 이슈가 없다. 업계와 깊이 있는 논의가 꼭 필요하다.

한 대기업 CEO는 "규제해소를 그냥 구호로만 외치다 보니 우리 스스로 저게 규제인지 장려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며 "탄소중립 산업을 키우는데 어떤 법과 시행령이 현장에 규제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현장과 정부 간에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먼저 만들면 탄소중립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해소 접근이 더 쉬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탄소중립+에너지안보' 둘 다 잡으려면 "'속도' 조절, '수단' 늘려야"
탄소중립 절벽 앞에서 '30년 규제전쟁' 마지막전투
탄소중립 과정의 중간 기착지 격인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업계에선 NDC 조정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왜 일까. 산업계는 '속도'와 '수단'의 관점에서 본다. 너무 빨리 추진하다 보면 외려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기 어려워진다는 거다. 속도를 조절하고 보다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 이를 통해 시장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수단의 다양성을 통해 다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기술과 에너지원을 활용한다면 그 틈에서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막 시장이 열리고 있는 수소에너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수소를 발전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하늘, 땅, 바다를 아우르는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이 열릴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서두르는 것 보다, 어떻게 달성하면서 경제 지속성장의 토대를 닦느냐가 중요하다는 거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현 NDC는 기존 목표를 무리하게 상향해 전원믹스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있다"며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합리적이고, 물리적으로도 가능한 에너지믹스를 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NDC 재설정을 국정과제로 삼은 새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것도 중요하다. 산업계의 우려가 큰 이유는 탄소중립 시계를 앞서서 돌리는 국가들과 당장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탄소중립 목표 시점이 빠른 나라는 핀란드,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스웨덴 등이다. 반면 산업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우리보다 늦은 2060년을 목표로 한다. 잠재적 경쟁국인 인도는 아예 2070년에나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쟁 기업들은 목표를 상대적으로 여유있게 잡고 벌어서 투자할 여력을 확보하는데 반해 한국 기업들은 국내기준을 맞추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미래에너지융합)는 "정유사업을 예로 들면 우리가 생산을 줄이는 만큼 중국이나 러시아가 시장을 그대로 가져간다"며 "탄소중립 목표가 우리보다 늦은 나라와 경쟁하는 부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소중립이라는 메가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 탄소중립 목표 설정의 기본적인 근거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2021년 10월)는 우리나라 전력수요가 2018년 570.6Twh에서 2050년 최대 1,257.7Twh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전기모빌리티가 획기적으로 보급될 향후 30여년 간 전력수요가 두 배 정도로만 늘어난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현장 의견을 반영한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는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현행 계획 하에서는 수소 등 대표적인 대체에너지원 활용 방안도 마땅찮다. 유 교수는 "현행 2030년 NDC를 이행하면서도 LNG발전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소혼소발전을 전폭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2030년까지 수소 50% 혼소를 완성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소 전소발전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수소 공급을 중심에 둔 그린전력 수급능력이 바로 산업경쟁력이 될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윤기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의 2020년 기준 에너지수입의존도가 93%에 달하는데, 내부적으로 어떤 에너지믹스를 구현한다 해도 이 비율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며 "그린수소의 생산과 안정적 도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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