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양민혁과 이복현[우보세]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22.06.20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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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2019년 11월 개봉한 '블랙머니'(Black money)는 2003년 외환은행 헐값 인수 후 2011년 매각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건을 다룬 실화 기반 금융 범죄물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의로운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이 극중 엘리트 경제 관료 집단과 대형 로펌이 기획하고, 썩은 검찰 수뇌부가 눈감은 대한은행 매각 사건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사실(팩트)과 다른 극적 과장과 과도한 선악 이분법이 몰입감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결말은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실화 그대로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극적 반전은 결국 일어나지 않는다.

개봉 직후 영화계와 법조계에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화제가 됐다고 한다. 양 검사의 실제 모델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양 검사로 분한 배우 조진웅의 풍채와 영화 속 캐릭터가 윤 대통령과 닮아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06년 대검 중수부 중수1과 부부장검사 때 론스타 사건을 직접 다룬 실제 수사팀의 주역이었다. 제작자와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블랙머니의 개봉 시점이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취임(2019년 7월) 직후라는 점도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참 공교롭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건 검찰 출신으론 처음으로 최근 취임한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 인선 뉴스를 접할 때였다. 블랙머니의 양 검사가 현실에서 '금융 검찰'(금감원) 수장으로 복귀한 느낌이랄까. 이 원장이 누구인가.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일원이자 공인회계사 출신의 대표적인 금융·조세 범죄 수사 전문 검사였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등이 몸담은 2006년 론스타 수사팀에도 차출돼 혁혁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 사건은 론스타 수사팀엔 미완이자 숙제로 남은 아픈 기억이었을 터다. 굵직굵직한 경제·기업 사건을 맡아 재계와 여의도(금융·증권가)에 '저승사자'로 통하던 윤석열 사단에는 더더욱 그랬을 것 같다. 인사권자가 된 윤 대통령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검은 돈(블랙머니)이 오가는 권력형 금융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선 경제·금융 수사 최고 전문가가 금감원장에 최적임이란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시장에선 신임 원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훨씬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시기적으로도 상황이 엄중하고 비우호적이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글로벌 긴축, 금리와 물가급등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복합위기가 현실화한 국면이다. 이 원장이 강점과 전문성을 가진 검사와 제재,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도 중요하지만 건전성 감독과 금융시스템 리스크 선제 관리가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다.

답은 취임사에 나와 있다. 이 원장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저 자신이 제일 먼저 귀를 열고, 들으려 노력하겠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부처와 공조하고, 금감원 내부와 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은행장들을 만나는 오는 20일 간담회에서도 가급적 많이 듣길 바란다.

'블랙머니' 양민혁과 이복현[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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