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가 촉발한 갈등이 범죄로...동물 좋아하지 않을 권리는?

머니투데이 김도균 기자 2022.06.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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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판 N번방]⑤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법

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온라인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 동물을 불로 태우고, 꼬리를 자르고, 철사로 묶는 등 잔혹하게 학대한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추적이 어려운 탓에 '동물학대 인증방'은 텔레그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자동차 아래 숨어있는 고양이의 모습. 기사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관계없음./사진=뉴스1자동차 아래 숨어있는 고양이의 모습. 기사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관계없음./사진=뉴스1


#지난해 4월 인천시 계양구에 사는 60대 여성 A씨가 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70대 여성 B씨을 말다툼 끝에 밀어 다치게 한 혐의다. A 씨는 B씨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보고 "고양이 때문에 시끄럽고 주변이 지저분하니 먹이를 주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참견하지 말고 가라"고 했고 다툼이 벌어졌다.

이처럼 고양이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과 이른바 유기묘 등을 돌보려고 하는 '캣맘'간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물 보호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방식의 동물 보호는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양이가 내 차 긁고 갔다"…동물 민원 절반이 '고양이 때문'
2일 경기도 하남시의 한 편의점 옆 공간. 업주 이병희씨(30·가명)는 지난해 여름 50cm 남짓 되는 이 공간에 죽어있던 고양이를 발견했다./사진=이병희씨 제공2일 경기도 하남시의 한 편의점 옆 공간. 업주 이병희씨(30·가명)는 지난해 여름 50cm 남짓 되는 이 공간에 죽어있던 고양이를 발견했다./사진=이병희씨 제공
17일 서울시 동물보호과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신고된 전체 5만402건의 동물 민원 중 길고양이와 관련된 민원은 2만6328건으로 절반이 넘는다.

서울시의 경우 2008년부터 시행된 중성화 사업(TNR 사업)에 따라 지난해 10만마리 아래(9만800여 마리)로 줄어들었지만 고양이로 인한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병희씨(30·가명)도 길고양이로 골머리를 앓은 사람 중 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여름 매장 근처에 방치된 길고양이 사체 때문이다.

매일 편의점으로 출근하던 이씨는 며칠째 불쾌한 냄새가 가시질 않아 근처를 살펴보던 중 이씨의 편의점 건물과 옆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 죽은 채로 누워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숨진 고양이 주변에는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이씨는 고양이의 사체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고양이는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죽는 습성이 있어 김씨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누워있었다. 이씨의 건물 소유주와 옆 건물주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기 바빴다. 시청 담당자 역시 사유지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다 몇 시간 만에 도착해 사체를 일부 수습했지만 잔해를 치우는 것은 고스란히 이씨의 몫이었다.


이씨의 편의점은 매장 외부에도 매대를 놓고 영업하는데 고양이 사체가 남긴 악취는 장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씨는 "사람들이 가게에 오려다가도 냄새가 나니 찡그리고 가더라"며 "그때 외부 장사를 3일은 말아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저층부 주민들에게는 큰 골칫거리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1층에 거주했던 김모씨는 "봄과 여름 고양이 발정기 철만 되면 날카롭게 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김씨는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나 더워질 때 주로 울었던 것 같다"며 "창문을 닫아도 들리는 소리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고 밝혔다.

김씨의 말처럼 고양이는 1년에 2번 발정기를 맞는데 그 시기는 주로 2~4월 경과 6~8월 경으로 알려져있다. 발정기를 맞은 고양이는 평소보다 날카롭고 큰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낸다.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게 울기 때문에 기온이 높아지는 봄·여름 저층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길고양이가 사람들의 재산을 해치는 일도 적지 않다. 고양이들이 주택가에 주로 서식하는 만큼 자동차에 올라타거나 자동차 밑에 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30대 C씨는 지난달 초 승용차에 탑승하려다 보닛 위에 올라탄 고양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고양이 역시 C씨를 보고 도망갔지만 구입한 지 3년 남짓 된 C씨의 은색 차량에는 고양이 발톱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추운 겨울철에는 길고양이가 차량 엔진룸에 들어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은신을 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고양이의 특성상 숨을 곳이 필요한데 차량 엔진룸을 적당한 은신처로 여기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고양이가 계단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 기사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관계없음./사진=뉴스1  동물원에서 고양이가 계단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 기사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관계없음./사진=뉴스1
최근 구독자 164만명의 유튜브채널 '오킹TV'를 운영하는 유튜버 '오킹'은 고양이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 달 15일 게시된 영상에서 오킹은 치킨 브랜드 광고를 위해 치킨이 배달됐으나 이를 모르고 있다가 밤 사이 길고양이들이 이를 헤집어 뜯어 먹어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를 타려고 했는데 차 위에 양념치킨이 묻은 고양이 발자국이 묻어있었다"며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일부 누리꾼들의 반발을 샀다. 이후 오킹은 실제로 죽이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해명 영상을 올리면서도 "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물권 보호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방식의 동물 보호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보호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의 유주연 대표는 "좋은 일을 하면서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것은 명분이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은 먹이통 근처가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변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먹이만 주고 근처에 벌레가 꼬이도록 방치한다든지 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어 "길고양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모두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밥을 주는 주체도 사람이고 고양이를 보호하는 주체도 사람인데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접근이 잘못된 방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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