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투표 안한다? 못한다?…지선 외면하는 외국인 유권자 속사정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2022.05.3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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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영등포구청 위생과 직원들이 상인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 홍보 전단과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뉴스1  지난 2020년 1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영등포구청 위생과 직원들이 상인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 홍보 전단과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뉴스1


"영주권 교육 때 투표할 수 있다고 배운 거 외엔 정치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장사도 해야 하고, 누가 누군지 공약이 뭔지도 몰라요."

"우리는 비자정책 정도만 관심 있지 지방선거에서 누가 당선돼도 환영하면 그만이에요"



31일 머니투데이가 투표권을 가진 외국인들에게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것이냐'고 묻자 이같은 답이 돌아왔다. 2006년 일정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 주어지고 있지만 외국인 유권자의 투표율은 점차 줄고 있다. 선거 결과가 그들의 실생활과 멀어지고 있어서다.

외국인유권자 10명중 1명만 투표…"정치 맥락 잘 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율은 2010년(제5회) 35.2%, 2014년(제6회) 16.7%, 2018년(제7회) 13.5%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같은 기간 전체 투표율이 54.5%, 56.8%, 60.2%로 상승세를 그린 것과 반대다.



외국인 유권자 10명 중 8명은 중국인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외국인 유권자는 12만7623명인데 이 중 9만9969명(78.9%)가 조선족 등 중국인 유권자다.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 거주한 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

영주권이 있는 외국인들은 H-2(방문취업), 재외동포(F-4) 비자 등을 발급받아 일용직에 종사하는 이들과 달리 회사에 대다수가 다니거나 자영업·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걸로 나타났다. 사전투표를 하거나 투표일에 일정 조정이 가능한 이들이 대다수지만 투표장을 찾는 외국인 유권자는 10명 중 1명에 그친다. 투표장에 갈 여유는 있어도 투표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많은 셈이다.

외국인 유권자들은 지방선거가 자신들의 삶과 관련 없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는 조선족 조모씨(37)는 "어느 정당에서 누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보니 그나마 서울시 교육감 후보 이름은 알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이번 지방선거일에도 수요일에도 투표하러 갈 계획은 없다.


조씨는 한국에서 17년을 살았지만 정치에 대해서 배운 건 영주권 취득 교육 때 일정 요건을 갖추면 지방선거 투표권이 생긴다는 게 전부다. 정당 사이의 관계, 주요 후보자의 이력이나 공약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조씨를 비롯해 조선족 동포들이 가장 관심 있는 건 비자정책과 새정부의 중국과의 관계지만 지방선거에서는 관련 정책이 다뤄지지 않는다. 외국인에게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5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박모(56)씨는 "나는 화장품 가게를 열고 싶은데 새 정부와 중국과의 관계나 비자정책에 관심이 많다"며 "지방선거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투표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투표율을 낮게 만드는 요인 중하나다. 중국인들은 중국에 살 때 투표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 체감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대림시장에서 우육면집을 운영하는 전길순(52)씨는 "후보가 누군지, 공약이 뭔지도 모른다"며 "투표일에 장사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도 자체가 낮아서 투표할 마음도 없다"고 했다.

한 조선족 단체 관계자는 "동포들 대다수가 투표를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며 "정당이나 후보의 관계 같은 정치적 맥락에 대해 모르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일반 한국인들보다 훨씬 낮다"고 했다.

기호 1번이 누군지도 몰라…"한글 밑에 영어라도 써줬으면"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사거리에 걸려 있는 선거 플래카드.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지역이지만 영어로된 플래카드는 없었다./사진=정세진 기자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사거리에 걸려 있는 선거 플래카드.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지역이지만 영어로된 플래카드는 없었다./사진=정세진 기자
언어도 외국인 유권자들의 참정권 행사에 장벽으로 작용한다. 선거 벽보, 플래카드, 각종 선거 유인물이 모두 한국어로 돼 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한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존슨(51)씨는 "기호 1번이 누군지, 공약이 무엇인지 모두 한글로 돼 있다"며 "투표는 하고 싶은데 공약도, 후보도 누군지 몰라 할수가 없다"고 했다.

서울 용산 이태원에 사는 존슨씨는 거리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와 벽보를 읽지 못한다. 한국어는 기초적인 수준의 말하기와 듣기만 가능한 수준이다. 오는 수요일에 투표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누가 어떤 공약이 있는지 알지 못해 투표소에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태원 바버샵에서 일하는 미국인 에릭 존슨(31)씨는 "주변 외국인들은 비자정책에 가장 관심이 많은데 대통령 선거가 아니면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그래서인지 지방선거에 관심이 있는 고객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한국에 10년째 거주 중인 러시아인 J씨는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안 됐다"며 "그동안은 투표를 해도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 대부분이 투표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선관위는 온라인 홈페이지에 영어, 중국어 등으로 투표 방식 등을 안내하고 있다. 등록된 외국인유권자에게는 투표소 위치 등을 기재한 외국어 안내문도 보내고 있지만 출마 후보, 주요 공약 등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중국인에 투표권 주는 건 불공정" 의견도

(오산=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31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롯데마트 사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5.31/뉴스1  (오산=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31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롯데마트 사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5.31/뉴스1
일각에서는 외국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12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중 중국인이 약 10만여 명, 즉 전체 외국인 유권자의 거의 80%에 육박한다"라며 "대한민국 국민은 단 1명도 중국에서 투표하지 못하는데, 1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우리나라 투표권을 가지는 것은 불공정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또한 박빙 지역에서 특정 국적 유권자의 몰표는 당락을 좌우할 수 있고, 이는 민심을 왜곡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면서 "국가가 보장하는 투표권과 소유권은 마구 나눠주는 선물이 아니다. 인류가 오랜 기간 쟁취해온 권리이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배종호 세한대 교양학부 교수는 "교육을 통해 참정권 행사가 왜 중요한지 알려주고 정치현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며 "그들이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를 위해서 외국인에게 민주 시민 교육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유럽에서도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나라가 있지만 외국인을 위해 따로 해당 국적의 언어로 선거관련 유인물 주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은 안되지만 우대를 해줄수는 없다"며 "기회는 주되 살리고 안 살리고는 본인에게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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