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스튜디오피닉스, 초록뱀미디어, SLL
#왜 대중은 구씨의 이 직업을 거부할까?
"옛날에 뭐했어요""라고 묻는 염미정과 시청자들의 구씨를 향한 ‘관심’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일까? 이는 바로 작가가 이 드라마에서 제시한 주요 키워드인 ‘추앙’이다. 추앙(推仰),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염미정은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라며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라고 강조한다. 이 날 이후 구씨는 염미정을 추앙하기 시작하고, 염미정 역시 구씨를 추앙하며 서로에게 의미있는 대상이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 역시 구씨를 추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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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호스트바 마담이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주는 어감과 인식을 정확히 포착한 박해영 작가의 ‘한 수’라 할 수 있다. 구씨는 염세적인 사람이다. 속을 알 수 없고 다가가기 쉽지 않다. 그만큼 쉽게 마음을 열지도, 곁을 내주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은근히 주변 사람을 챙기고 숨겨둔 재주도 많다. 상대방을 구속하지도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묵묵히 곁을 지킨다. 스스로도 역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소주 딱 두 병에 만족한다. 어떤 과거를 가졌건, 지금의 구씨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무해한 존재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가진 ‘해방’에 아주 적합한 인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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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스트바 마담은 어떤 직업인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 장사’를 하는 사람이다. 인간을 성적 대상화하는 동시에, 이성에 대한 감정을 돈으로 사고파는 부류다. 해방과 가장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더욱이 추앙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그러니 그동안 그를 추앙하던 시청자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벽을 만난 셈이다.
#왜 박해영 작가는 이같은 직업을 설정했을까?
여기서 궁금한 건 박해영 작가의 속내다. 수많은 직업군 중 왜 하필 호스트바 마담이었을까? 그동안 그의 작품 세계와 ‘나의 해방일지’의 통찰력을 곱씹어왔을 때, 구씨의 직업이 공개되면서 벌어질 후폭풍을 내다보지 못했을 리 없다. 이건 분명 의도된 배치로 읽힌다. 다시 한번, 그렇다면 왜일까?
이는 결국 염미정을 비롯해 시청자들이 해방을 원하면서도 스스로 구속받으러 걸어들어가는 성향을 보이는 것에 대한 일침이라 할 수 있다. 극 중 구씨는 무엇도 한 적이 없다. 누군가의 긍정적 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한 적도 없고, 자신을 꾸미려 한 적도 없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오히려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꺼린다. 쉽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신비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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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방과 반대되는 구속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만들어지지만 스스로 만든 함정일 때가 있다.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적은 법인데, 많은 이들이 이 기대감을 갖고 누군가에게 다가간다. 염미정이 "할 일을 주겠다"며 "나를 추앙하라"고 한 것 역시 먼저 관심을 표했다고 할 수 있다. 구씨는 이에 따랐을 따름이다.
결국 시청자들은 호스트바 마담이라는 구씨의 직업에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기대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셈이다. 또 몇몇은 "호스트바 마담이면 어떴나"며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어차피 구씨는 드라마 속 인물이니까. 그런데 만약 내가 현실 속에서 호감을 가졌던 인물이 과거 호스트바 혹은 호스티스바 마담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많은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판타지 속에서 살아간다. 판판이 그 판타지가 깨지면서도 또 몽상을 한다. 그래야 잠시나마 행복하니까. ‘나의 해방일지’ 역시 다르지 않다. 구씨의 판타지가 깨지고, 이 드라마가 끝나면 많은 이들이 또 다른 드라마와 캐릭터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갈 거다. 정말 해방이 되고 싶다고? 그렇다면 스스로 만드는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