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인플레이션과 빚잔치, 그리고 도덕적 해이

머니투데이 이학렬 금융부장 2022.05.27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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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금으로 빚잔치를 벌인다.

국회가 조만간 윤석열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추경안에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자영업자 빚을 탕감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새출발기금'(가칭·이하 새출발기금)을 만들어 소상공인이 가지고 있는 빚을 사들여 채무조정해준다. 특히 장기로 연체된 빚은 최대 90%까지 감면해준다.

빚잔치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하는 일이 돼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신용회복기금을 만들어 5000만원 미만 연체 6개월 이상 다중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줬다. 박근혜 정부는 신용회복기금을 국민행복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1억원 이하 빚까지 감면해줬다. 문재인 정부는 두차례에 걸쳐 빚을 탕감해줬다. 한번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모아 소각했고 10년 넘게 1000만원이 안되는 돈을 갚지 못하는 이들의 빚을 탕감해줬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빚잔치는 역대급이다. 우선 채무조정 대상자 기준이 넓다. 과거엔 주로 서민들의 적은 빚을 탕감해줬다. 하지만 이번 지원 대상자의 예시로 제시된 '손실보상금 지원대상자'와 '금융권 만기연장·상환유예 이용자'는 사실상 모든 자영업자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어 금융권 지원을 받았으면 매출이 1억원이든 100억원이든 빚을 탕감받을 수 있다.

지원도 파격적이다. 금융위원회는 "과감한 원금감면"이라고 설명하면서 감면비율을 60~90%라고 예시했다. 친절하게 유사한 제도의 감면율이 △개인사업자119 '없음' △신용회복위원회 0~70% △국민행복기금 평균 54.6% △법원 개인회생 평균 60% 등이라며 '새출발기금'의 높은 감면율을 강조했다.



최대 30조원 규모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행복기금이 매입한 채권액 18조2000억원의 2배 수준이다. 정부가 매입하는 채권가격은 평균 60%다. 부실채권을 더 낮게 사들이고 예산을 다 쓴다고 가정하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매입가율을 낮춰 지원대상을 늘리자라는 얘기가 나왔다.

물론 30조원 중 빚탕감은 일부에 그칠 수 있다. 대부분 금리를 낮춰주거나 상환일정을 늘려주는 지원일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빚을 성실히 갚아나가는 소상공인이 많아서다.

하지만 벌써부터 원금감면만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다. 2021년 7월 금융권 만기연장·상환유예 잔액은 120조7000억원이었으나 올해 1월 잔액은 133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규모는 물론 지원대상, 지원내용이 파격적인 만큼 '도덕적 해이'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추경안을 논의하는 국회에서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오히려 소관 상임위원회에서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탓하며 관련 예산을 7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렸다. 정무위원회 소관 추경안 중 유일한 증액이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부대의견도 달렸다. 코로나19 피해로 이미 폐업한 자영업자도 채무조정 지원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여야가 '선심'을 쓴 결과다.

[광화문]인플레이션과 빚잔치, 그리고 도덕적 해이


코로나19 팬데믹 못지 않은 인플레이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두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금융위도 추경안에 채무조정안을 담으면서 "물가 상승압력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 신규자금보다 기존부채 조정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빚(돈)을 태워 없애는 게 인플레이션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돕는데 이견은 없다. 부자가 아닌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인플레이션은 가장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해롭다"고 했다. 하지만 성실히 빚을 갚아온 자영업자가 박탈감을 느끼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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