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여성 1억3600만명이 '실종'된 이유 [데이:트]

머니투데이 유효송 기자, 임소연 기자 2022.05.2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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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45년간 여성 1억3600만명이 '실종'된 이유 [데이:트]
무슨 일이 있었죠
지난주까지 임공임신중절권(낙태)을 제한하려는 미국과 전 세계의 임신중절 관련 통계를 살펴봤죠. 오늘은 '실종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납치와 가출 이야기가 아니에요. 사회·문화적 차별에 의해 사라진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출생 전 성별에 의한 선택적 임신중절, 즉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행태로 사라졌거나 출생 후 방치와 학대로 사망한거죠. 이번주 [데이:트]는 45년간 지구상에서 1억 명 이상의 여성들이 사라진 이야기입니다.

/사진제공=아워월드인데이타/사진제공=아워월드인데이타


더 들여다보면
2015년 '인구와 개발 검토 저널(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에 실린 인구통계학자 존 본가츠와 크리스토프 길모토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70~2015년 사이에 1억360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지구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실종된 여성들이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이 처음 언급한 개념입니다. 여아 선택 임신중절과 영유아 살해 등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이 살아남았을 경우 예측치와 실제 여아 수의 차이를 비교한 수치를 의미해요. 연구진은 앞으로도 '사라질' 여성의 수는 계속 늘어 2035년엔 누적 1억5000만 명에 달할 걸로 예상했어요.

성비는 여아 출생 100명당 남아 출생 수를 의미합니다. 보통 생물학적으로 출생 시 자연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3~105명 정도로 봅니다. 이를 인정하고 보더라도 각 사회마다 실제 출생 성비는 큰 편차를 보여요. 연구진은 출생 성비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요인으로 '남아 선호'를 꼽습니다.



전 세계 성비 상황을 보면 전통적으로 남아선호 사상이 짙게, 또 오래 남아있던 중국과 인도 등에서 높게 나타나요. 2019년 기준 세계은행의 여아 출생 100명당 남아 출생 데이터를 보면 △아제르바이잔(112.3) △중국(112.2) △베트남(111.3) △아르메니아(110.6) △인도(110.0) 순이죠.

같은 해 기준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성불평등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국가들은 어떨까요. 성평등 1위 국가인 스위스의 성비는 105.2 △덴마크(105.6) 네덜란드(105.2) △스웨덴(106.0)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성평등 지수가 높을수록 출생 성비가 자연적이라고 여겨지는 수치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죠.

실제 성비 불균형이 본격적으로 심해진 건 출산 전 태아 성별을 감별할 기술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입니다. 물론 위에서 불균형이 심한 국가로 언급한 곳들은 해당 기술 등장 전에도 성비 불균형이 두드러졌죠. 태어나더라도 여아란 이유로 방치되고 돌봄을 받지 못해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45년간 여성 1억3600만명이 '실종'된 이유 [데이:트]
우리나라도 비슷했습니다. "분홍색 옷을 준비하셔야겠어요"라는 의사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성별 판별 초음파가 도입된 1980년대 이후 출생 성비는 급격히 기울어요. 1987년 의료법상 '태아 성감별'을 불법행위로 제재하기 시작했지만 유교 문화가 강하게 남아 남아를 선호했던 30여년 전 상황은 달랐습니다. '범띠, 용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등의 성차별적 통념이 우리 사회를 기울어지게 만들었던거죠. 이로 인해 성비는 1980년 108.3 수준에서 60년 만에 한 번 돌아온다는 백말띠해(1990년)에는 역대 최악의 성비(116.5)에 달했습니다. 이후 성비불균형은△1995년(113.2) △2000년(110.1) △2005년(107.8) △2010년(106.9) △2015(105.3) △2020년(104.8) 점점 해소되는 추세이긴 합니다.

그래서요?
문제는 1990년대~2000년대 초 발생한 여아 선택적 임신중절 등으로 인한 '성비 불균형'이 사회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출생 성비가 자연 비율 이상의 불균형을 띤다는 건 그 사회가 남아 선호 경향을 유지 중이거나 오래 지속해왔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여성 배제적인 분위기에 더해 인구마저 남성에 기운다면 그 사회경제적 구조는 남성 위주로 형성될 확률이 크고요. 자연스레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활동 기회를 잡기 위해 해당 지역을 떠나려 할 거예요.

45년간 여성 1억3600만명이 '실종'된 이유 [데이:트]
지난해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7개 특별·광역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세종)는 거주 인구 중 여성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또 이 7개 지역에선 지난 10년간 여성 비율이 계속해서 상승했어요. 그런데 특별·광역시가 아닌 도 단위 지역에선 반대였어요. 전국적으론 남성이 더 많지만, 대도시에 여성이 몰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방 도시에서 여성들이 떠날수록 해당 지역은 더욱 남성 중심화되는 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일부에선 그 결과 중 하나로 시골 지역의 혼인율 하락을 꼽기도 해요. 지난해 지역별 혼인율은 서울이 4.7건인 반면 △전북 3.3건 △전남 3.5건 △경남 3.5건 등에서 특별히 낮았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20대 남성은 같은 연령대 여성보다 33만 명 많습니다. 이는 '20대 유권자'로 볼 때 두 성별 집단 사이에 정치적 영향력의 차이를 만들 수 있어요.

이미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남녀 출생 성비 불균형의 결과로 가임 여성 수는 남성에 부족한 상황입니다. 출생률 하락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장기간 해온 선택의 결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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