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AP/뉴시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대법원 밖에서 임신중절권을 옹호하는 시위대가 불법 임신중절 시술의 상징인 옷걸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주 [데이:트]에선 세계보건기구(WHO)와 재생산권센터(Center of Reproductive Right) 등의 자료를 통해 전 세계의 임신중단 관련 법적 제한과 임신중단 건수, 그리고 여성의 보건 접근성과 자기결정권을 다뤄보려 합니다.
/사진제공=구트마허 연구소
오늘은 그 중에서 '임신중절을 허용하면 무분별한 임신중절이 늘어나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짚어봅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요?
2020년 기준 임신중절권을 제한한 국가들에서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은 1000명 당 73명, 임신중단율은 1000명 당 36명이에요. 임신중절권을 인정하는 국가에선 의도하지 않은 임신 비율 1000명 당 58건, 임신중단율은 1000명 당 40건이었어요. 공식적으론 허용 국가에서 임신중단율이 소폭 높았는데, 임신중절이 불법인 국가에선 암암리에 이뤄지는 시술이 많아 과소 추정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소 설명입니다.
/사진제공=구트마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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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절 건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하루 136명(2017년 기준)의 여성이 수술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임신중절 감소의 원인으로는 △피임실천율 증가 △응급(사후)피임약 처방 건수 증가 △만 15~44세 여성의 지속적 감소 등이 꼽혔습니다.
그래서요?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269조 '부녀가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낙태죄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법이 폐지됐음에도 여성들의 투쟁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법 조항은 사라졌지만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적 기반은 마련되지 않았거든요.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WHO에 따르면 산모가 원할 경우 임신 후 일정기간까지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나라는 56개국입니다. 임신중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들 중 전문 공공시설을 갖춘 나라는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을 포함한 14개국뿐입니다. 인공유산유도제인 미소프로스톨·미페프리스톤 성분 약은 전 세계 57개국이 허용하고있지만 우리나라는 예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임신·임신중지 등)에 대한 논의는 멈춰 있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임신중단 방법과 보험적용 범위, 인공유산유도제 수입 허용 여부 등을 담은 대체 입법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헌재는 보완 입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뒀지만 임신 14주까지 허용, 15~24주 조건부 허용 등을 담은 정부 개정안은 지금 이 시간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의 안전과 존엄, 건강을 보장받을 권리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게 현실이죠. 국가가 이를 방치하는 사이 합법과 불법 사이 그 어딘가에서 위험한 시술과 약에 의지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