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생태계 수도권 쏠림 여전...모태펀드 '지역할당' 재도입해야"

머니투데이 사회·정리=류준영 기자 2022.05.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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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팩토리 1주년 특별좌담회-지역균형발전의 돌파구 '혁신창업']

편집자주 조선, 철강 등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지역 주력산업의 침체로 지역경제가 위기다. 전통적 기간산업의 성장·고용이 모두 부진하면서 '대기업 중심 추격형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은 이제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혁신 창업생태계 구축을 통한 성장동력 확충'을 제시했다. 머니투데이 액셀러레이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는 출범 1년을 맞아 '지역 창업생태계 현황 및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차별화된 창업생태계 구축과 발전을 위한 방향성, 세부방안 등을 제시하고자 한다.

(왼쪽부터)조국형 경남벤처투자 대표이사,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대표, 김종인 디엑스솔루션스 대표, 김흥섭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 선임기술원/사진=전기연  (왼쪽부터)조국형 경남벤처투자 대표이사,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대표, 김종인 디엑스솔루션스 대표, 김흥섭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 선임기술원/사진=전기연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인구는 서울, 수도권 다음으로 많고 현대중공업 등 뿌리산업들도 많지만 창업생태계로만 보면 변방에 가깝다. 전국, 대도시 대비 창업률이 저조한데다 투자 및 인력, 창업지원기관 등 창업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하지만 사회 경험과 기술의 숙련도가 높은 40~50대 창업자 비중(73%)이 높고, 전국에 비해 공공연구기관으로부터 기술이전·제휴가 활발하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창업 인프라가 균형있게 갖춰진다면 딥테크(첨단기업) 창업 성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4일, 경남 창원 소재 한국전기연구원 본관동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조국형 경남벤처투자 대표이사,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공동대표, 김종인 디엑스솔루션스 대표, 김흥섭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 선임기술원 등 지역 현안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이런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디엑스솔루션즈는 창원강소특구 연구소기업으로 재무·회계·구매·고객관리 등의 업무를 자동화한 'RPA'(로보틱 처리 자동화) 분야에 특화한 업체다. 경남벤처투자는 도내 1호 벤처캐피탈(VC)로 200억원 규모의 '경남 리버스 이노베이션 투자조합펀드' 운용하며 제조 기반의 벤처·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작년 총 110억원을 투자했고, 이중 70%는 지역기업에 들어갔다. 시리즈벤처스는 부울경 지역 특화 AC로 경남 창원, 진주 강소특구 중심으로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초기 자금투자 및 보육, 후속투자 연계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은 창원·김해 등의 강소연구개발특구에 기반한 기술개발, 기술이전·사업화, 강소형 기술창업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김종인 디엑스솔루션스 대표/사진=전기연김종인 디엑스솔루션스 대표/사진=전기연
-벤처투자가 붐인데 경남권은 어떤가.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공동대표(이하 박 대표)=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작년 경남 벤처투자액은 443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액(7조6802억원)의 0.6%에 불과한 수준이다. 전체 투자금 대비 수도권 투자액 비중은 75%를 넘어섰다. 지난해 수도권 소재 벤처기업은 2만3794개로 전체(3만8319개) 62.1%를 차지한 반면 경남 벤처기업은 4.5%인 1710개 정도에 머문다.

-스타트업 하기엔 어떤가.
▶김종인 디엑스솔루션스 대표(이하 김 대표)=2020년 4월 서울에서 창업해서 창원에 내려온 건 작년 7월이다. 아무래도 지역은 보수적인 부분이 있어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IT분야에서 기존에 하던 ERP(전사적자원관리)나 MES(생산관리프로그램) 개발·운영에만 집중하고 새로운 기술은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창원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서울에서 문의가 더 많다.

-경남권 VC·AC 현황은.


▶조국형 경남벤처투자 대표이사(이하 조 대표)=예전에 경남창투라는 곳이 있었는데 2004~2005년쯤 경남은행이 BNK로 넘어가면서 민간으로 지분이 넘어갔고 그렇게 좀 있다가 사라졌다. 이후로 약 15년간 이 지역에 VC가 단 한곳도 없었다. AC도 3~6개 정도로 몇 안 된다. 지금 경상남도도 인구는 330만, 부산은 350만, 울산은 140만 정도 되고, 다 합치면 820만명 정도 된다. 서울(951만명), 경기(1356만명)를 제외하고 인구가 가장 많이 포진돼 있다. 인구 비율로 따져봐도 VC·AC, 펀드 등이 상대적으로 너무 작다.

-경남권 창업에 특이한 점이 있다고.

조국형 경남벤처투자 대표이사/사진=전기연조국형 경남벤처투자 대표이사/사진=전기연
조 대표=현대중공업, 현대차, SK케미칼 등 창원엔 대기업들이 많이 내려와 있다. 여기 다녔던 분들이 은퇴하고 나와서 창업을 한다. 용역 형태로 수입을 많이 챙겼고 단일 가구당 수입도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 경기가 다 죽으면서 하청 기업들의 경기도 덩달아 죽었다. 게다가 기술 트렌드가 변하면서 걱정도 늘었다. 예컨대 대기업들이 내연기관 대신 전기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다. 30년간 그 일만 해오던 1세대 경영인들이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제분들, 그러니까 2세 경영인을 통해 스핀오프(분사)해서 벤처·스타트업을 차려 활로를 모색 중이다.

▶김흥섭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 선임기술원(이하 김 선임기술원)=창원 상공회의소에선 스핀오프하려는 2세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세대 경영인은 이런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나타낸다. 그런 회사 중엔 연매출 5000억원씩 되는 곳도 있다. 이런 기업들을 대상으로 강소특구 내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펀드를 마련할 계획이다.

조 대표=얼마 전 저희가 후속 투자를 위한 민간 출자자(LP)들을 모아 얘기하는 자리에 지역 1세대 경영인들이 많이 오셨다. 그분들이 이런 자리를 계속 마련해주면 굳이 서울까지가서 투자 정보를 얻어올 필요가 없겠다고 말씀하셨다. 지역에서 성공하셨기 때문에 지역내 학교에 장학금 주는 공익사업에 적극적이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께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 돈 없어 학교 못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취업이나 창업에 있어 고민이 많으니까 장학펀드 보단 '창업펀드'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정부도 지역 창업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실상은 어떤가.

▶조 대표=정부는 지역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그러는데 정작 모태펀드나 벤처캐피탈협회 자료를 보면 펀드 규모는 커졌지만, 지역 투자 통계는 형편없는 실정이다. 투자 여력이 충분치 않다 보니 지역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박 대표=우리가 투자한 회사인데 서울에 있는 모 투자사가 본사를 (서울로)옮기면 투자해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잘 키워놓으면 다른 데서 빼가기 일쑤다. 서울은 1번부터 10번까지 다 세워놓고 잘 하는 기업 하나 선정해 재무적 투자를 하면 그만이지만, 지역에선 땅에 심어서 물주고 키워서 싹이 올라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지역펀드를 늘릴 방법이 없나.

▶박 대표=정부가 매년 4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만드는 데 이중 지역뉴딜펀드는 100~200억원 수준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펀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 등 창업 초기 펀드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사업 꼭지마다 '지역 계정'을 따로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할당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김흥섭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 선임기술원/사진=전기연 김흥섭 전기연구원 강소특구기획실 선임기술원/사진=전기연
▶조 대표=2019년에 지역 계정이라는 게 원래 모태펀드에 있었다. 그런데 2020년 이후 사라졌다. 지역에 20~30% 정도 투자 하겠다면 가점을 주는 제도가 나오면서다. 가점 항목들은 지역에 사무실을 내거나, 지자체와 함께 출자를 했거나, 지역에서 LOI(투자의향서), LOC(투자확약서)를 받았다 등이 있는 데, 여러 개를 한다고 해서 점수가 더 많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저희 같은 경우 지역에 본사가 있고, 지역에서 출자가 들어와 있고, 지역펀드도 운영하지만, 서울에 있는 VC가 지자체로부터 LOI 하나 받으면 점수는 똑같아진다. 가점 혜택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력이나 펀드 수, 투자인력 위주로 펀드를 나눠주다 보니 지역펀드조차 서울에 있는 VC 위주로 선정된다.

박 대표=지역에 팁스(TIPS) 운영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총 80여개라면 서울에 40여개, 경기에 13개 안팎으로 몰려 있다. 그러니 지역 VC·AC가 (스타트업을)다 키워놓고 팁스 때문에 서울에 있는 팁스 운영사에 함께 하자고 손을 뻗어야 한다. 그랬다가 해당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팁스 운영사의 성과로 보이니 아쉬움과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경남권엔 창업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박 대표=경남지역엔 산업단지공단 중심으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부지는 많은 데 스타트업들이 모여있는 지식산업센터는 거의 없다. 부산도 사실 센텀 말고는 지식산업센터가 없다.

▶김 선임기술원=TP(테크노파크) 등이 외곽 쪽에 있고 특히 창원은 제조업 중심이다 보니 서울 강남·판교 같이 기술창업 기업들만의 집결지가 없다. 그래서 2019년 강소특구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 부분에 공을 가장 많이 들여왔다. 작년에 창원시와 함께 공동출자로 17개 창업 기업이 당장 들어올 수 있는 기술창업센터를 전기연 입구 쪽에 증축했다. 오는 2024년엔 테크비즈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약 377억원이 투입된다. 지어지면 70개가 넘는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다. 여기에 지원 및 투자기관이 들어올 수 있도록 MOU 작업도 진행중이다. 오는 6월쯤에 한국자동차연구원도 들어온다. 전기연이 보유한 인공지능, 스마트 팩토리 연구센터 등 첨단기술을 기계산업에 적용해 고부가가치화를 견인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대표/사진=전기연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대표/사진=전기연
-사람 구하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김 대표=저희는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의 연봉을 대기업 초봉선까지 올렸다. 그렇게 해도 안 온다. 물어보니 20년 정도된 중소IT기업에서 안전하게 유지·보수하고, 돈을 덜 벌더라도 워라벨(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하는 게 우선이라고 하더라. 서울에서 스카우트하려고 시도했지만 창원에 대해 잘 몰라 안 오려 한다.

▶조 대표=인턴을 정직원으로 전환할 때 이 친구들 하는 얘기가 집에 가서 물어 보니 대뜸 "그 회사 위험한 거 아니냐"라고 되물어보셨다고 한다. 금융권에 라임펀드 사태 뉴스 보시고선 그런 반응을 보이셨다는데 서울에선 금융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VC쪽으로 어떻게든 이동하려 하는데 지역에선 여전히 최고의 직장은 은행같은 금융기관이다.

저희가 1호로 투자한 기업은 웹툰 업체다. 그 회사가 서울에 있다가 본사를 김해로 옮겼다. 그리고 문성대에 웹툰 학과를 만들어 거기를 졸업한 사람들을 채용한다. 우리가 투자를 하고, 기업들은 지역으로 본사를 옮기고, 이를 통해 일자리까지 생기는 선순환이 이뤄지게 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모델이다. 그게 지역 VC·AC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 선임기술원=양질의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VC·AC만 노력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입소문이 난 유명 창업도시가 되려면 강소특구가 윤활제 역할을 잘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예비 창업자를 모집해 아이템 진단·검증, 컨설팅, 투자연계 등 전 단계에 걸친 지원을 하고 있다. 강소특구 안에 다양한 기관들이 서로 협력해 노력한다면 '창업요람'을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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