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길우 부원장
SCI 논문게재 수는 세계 12위인데(2018년)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피인용 횟수 세계 점유율은 2.15%에 불과하다(2014~2018년). 건수 중심의 부실특허가 양산됨에 따라 과제 성공률은 99% 이상인데 사업화 성공률은 20%에 그친다. 정부R&D예산 배분·조정은 '상향식 요구 후 하향식 조정' 체계로 핵심기술이 누락되거나 사업간 중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러 부처가 옥상옥으로 쌓아올린 관리체계에서 R&D정책은 파편화하고 투자의 전략성은 약해진다.
우리 정부도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의 기술혁신전략 전환을 대내외에 선언하고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등으로 뒷받침하지만 정부R&D투자·평가 시스템의 변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빠른 기술혁신 속도, 연구생태계의 다양화, 연구자의 자율성 요구 등 글로벌 과학기술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정부R&D투자·평가 시스템으로의 조속한 전환이 필요하다. 이른바 자율과 책임의 R&D다.
신규 사업의 투자 적정성에 대해서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국가전략과의 부합성을 면밀히 살펴보되 계속사업의 예산은 부처가 중간·자체평가를 고려해 지출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개별 사업에 대한 예산요구액 조정보다 지출한도 총액규모의 적절성 심의, 한도 외 요구사업에 대한 심의, 평가결과에 따른 지출구조조정 반영 등에 집중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율과 책임'의 국가R&D사업 평가체계 혁신이다. 목표달성도 평가 대신 자율과 책임의 효과(impact) 평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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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단계에서는 부처의 사전기획, 전략목표 및 단계별·연차별 성과목표 수립의 적절성을 점검하고 이에 근거해 사업관리와 성과평가를 추진해야 한다. 수행단계에서는 중간평가 권한을 부처에 대폭 이양하고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중간평가의 적절성 모니터링과 성과미흡사업 및 현안사업에 대한 특정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 부처가 따로 없고 여야가 따로 없다. R&D에서 사업화까지 민과 관이 손을 맞잡아야 한다. 기술패권 대응을 위한 국가전략기술, 혁신도전형 R&D를 위한 한국형 DARPA,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임무 중심의 K문샷 프로젝트 등 새 술은 충분하다. 전략적 R&D투자·평가 시스템이라는 새 부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