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러시아 전쟁과 금융 무기화

머니투데이 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22.04.1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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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형 연구위원장보형 연구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온 세상이 뒤숭숭하다. 직접적 교전에 따른 피해 자체도 큰 문제지만 동시에 러시아에 맞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고강도 제재로 인한 이해득실(당연히 득보다 실이 크겠지만)에 대한 계산도 한창이다. 사실 코로나 충격도 직접적인 감염피해 이상으로 고강도 방역의 여파가 더 심각했다.

대러시아 제재의 이면에 놓인 복잡한 함수관계에 유의해야 한다. 우선 이번 제재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등 친서방 진영의 연합이 공고화하고 있지만 정작 세계 경제의 뉴파워, 즉 중국을 비롯해 인도나 브라질, 남아공,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은 동조하지 않고 있다. 가령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박탈하는데 찬성이 93개국이었지만 반대가 24개국, 기권도 58개국에 달했다. 글로벌 연합은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교전의 금융화' 혹은 '금융의 무기화'가 전면에 나섰다. 특히 러시아 중앙은행 자체를 표적으로 삼아 달러 위주 외환보유액을 동결하고 국제 금융결제망인 SWIFT에서 퇴출하는 등 제재의 범위나 강도가 전무후무한 수준이다. 9·11사태 이후 테러자금 지원을 차단하고자 금융제재가 시도된 적이 있고 이후 북한이나 이란, 베네수엘라, 터키, 심지어 크름반도 병합 직후 러시아 등으로 확산됐지만 이번처럼 달러의 막강한 지배력을 내세운 전면적인 금융무기화는 2차대전 이후 전례를 찾을 수 없다.

이제 탈냉전 시대의 기본가정들이 무너지고 있다. 얼마 전까진 세계화와 상호의존성 증대가 세계 경제의 번영을 뒷받침해 왔다. 위기의 단골소재였던 글로벌 불균형조차 상호의존적인 국제금융망을 통한 글로벌 외환보유액의 환류 덕에 지탱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중분쟁에 이어 러시아전쟁과 서방제재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패권분쟁이 확산하고 금융마저 교전의 신기술로 동원되고 있다.



일단은 달러 위주 국제금융시스템의 위력에 힘입어 서방 연합이 우세해 보이나 그 후폭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러시아지만 "다음은 누구?"라는 질문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각자 금융제재라는 새로운 꼬리위험을 모면하고 제재수단을 우회할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달러 위주 외환보유액이나 국제결제통화의 다변화 등을 통해 달러 의존성을 낮추려는 유인이 커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적처럼 이미 진행 중인 '달러 지배력의 은밀한 부식'이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

암호화폐는 차치하더라도 디지털위안화와 같은 달러 외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의 성장은 점차 달러의 지배력에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SWIFT를 대신해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 등 대안적인 결제망 확산도 서방 주도의 국제금융시스템을 파편화, 양분화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달러의 무기화가 과거 영국의 헤게모니 쇠퇴를 상징한 수에즈운하의 '금융판'일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온다. 당장에는 전쟁의 참사가 안타깝지만 그로부터 변화할 국제금융의 새로운 역학에도 깊은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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