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독일 칼 자이스재단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2.04.0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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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사진=김화진김화진 /사진=김화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NASA, ESA, CSA 3개 우주기구가 전세계 306개 협력업체와 개발했다. 망원경의 핵심장치인 반사경은 독일 정밀광학제품 제조기업 자이스의 한 자회사가 막스플랑크 천문학연구소와 함께 제작한 것이다. 자이스는 첫 플라네타륨을 제작한 회사이기도 하고 영화관 영사기와 할리우드가 쓰는 영화촬영용 카메라로도 유명하다. 전성기 노키아의 이동전화 카메라렌즈도 자이스 제품이었다.

최근 자이스란 이름이 국내 미디어에 등장한 것은 ASML 때문이다. 삼성을 포함한 반도체회사들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슈퍼을' ASML도 자이스가 렌즈를 제때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EUV리소그래피(극자외선노광)장비를 제작할 수 없다고 한다.



1846년 설립된 자이스는 안경렌즈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의 과학지식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현미경을 통해 펼쳐진다. 또 멀리 있는 물체를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게 하는 망원경이 있다.

자이스는 칼 자이스(1816~88년)가 독일 예나에서 안경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현미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현미경은 식물연구에 주로 사용된 장비다. 1860년대에는 독일 최고의 광학제품 회사로 자리잡았다. 물리학자 에른스트 아베와 화학자 오토 쇼트가 합류해 광학기기의 성능을 대폭 향상했다. 일반에선 카메라와 쌍안경이 큰 인기품목이 됐다.



자이스는 물론 군용장비도 생산했다. 저격용 라이플과 독일 육군의 티거전차 조준경 등을 포함한다. 그 때문에 2차대전 때는 나치의 강제노역 프로그램에 포함돼 전후엔 전범기업으로 분류됐다. 자이스는 옛 소련군 점령지역인 예나와 드레스덴에 위치해 일부가 서독 슈투트가르트로 이전, 새 회사를 만들었다. 동독 자이스는 동독 비밀경찰이 잠복 감시촬영에 쓴 고성능 카메라도 생산했다.

예나에 잔류한 회사와 서독으로 옮긴 회사는 지식재산권 분쟁으로 긴장관계에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 6년간 소송전도 치렀다. 모든 분야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통일로 두 회사는 다시 합쳐졌다. 자이스는 통일 후 동독지역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포함해 역사 전체에 걸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재단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상의 이점이 회사 임직원에게 큰 동기를 마련해줬고 이를 통해 위기를 잘 극복한 회사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모두 자발적으로 보수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칼 자이스가 사망한 후 아베는 자신의 회사 지분을 출연해 1889년 재단을 설립했다. 자이스의 아들과 오토 쇼트도 1891년과 1919년 각각 보유지분 전부를 재단에 출연했다. 재단은 오늘날 자이스그룹의 단독주주다. 재단은 주식을 처분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법인화 조치는 자이스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로 평가된다. 회사의 이익이 재단을 통해 모두 기술개발, 예나대학 지원, 임직원 복지후생에 사용되도록 해서 회사의 성장과 지속에 필요한 동력을 최고 수준으로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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