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사진=김화진
최근 자이스란 이름이 국내 미디어에 등장한 것은 ASML 때문이다. 삼성을 포함한 반도체회사들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슈퍼을' ASML도 자이스가 렌즈를 제때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EUV리소그래피(극자외선노광)장비를 제작할 수 없다고 한다.
자이스는 칼 자이스(1816~88년)가 독일 예나에서 안경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현미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현미경은 식물연구에 주로 사용된 장비다. 1860년대에는 독일 최고의 광학제품 회사로 자리잡았다. 물리학자 에른스트 아베와 화학자 오토 쇼트가 합류해 광학기기의 성능을 대폭 향상했다. 일반에선 카메라와 쌍안경이 큰 인기품목이 됐다.
예나에 잔류한 회사와 서독으로 옮긴 회사는 지식재산권 분쟁으로 긴장관계에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 6년간 소송전도 치렀다. 모든 분야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통일로 두 회사는 다시 합쳐졌다. 자이스는 통일 후 동독지역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포함해 역사 전체에 걸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재단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상의 이점이 회사 임직원에게 큰 동기를 마련해줬고 이를 통해 위기를 잘 극복한 회사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모두 자발적으로 보수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칼 자이스가 사망한 후 아베는 자신의 회사 지분을 출연해 1889년 재단을 설립했다. 자이스의 아들과 오토 쇼트도 1891년과 1919년 각각 보유지분 전부를 재단에 출연했다. 재단은 오늘날 자이스그룹의 단독주주다. 재단은 주식을 처분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법인화 조치는 자이스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로 평가된다. 회사의 이익이 재단을 통해 모두 기술개발, 예나대학 지원, 임직원 복지후생에 사용되도록 해서 회사의 성장과 지속에 필요한 동력을 최고 수준으로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