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줄 알았는데…" 몸값 뛴 8인치 반도체에 투자 못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2.04.05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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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지영 디자인기자/사진 = 김지영 디자인기자


생산성이 낮고 고부가 반도체에 쓰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8인치(200㎜) 웨이퍼(반도체 소재용 원판)가 귀한 몸이 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생산량 확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전자제품 수요 급등으로 8인치 웨이퍼 수요가 늘고 있으나 일시적 현상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다 이미 생산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8인치용 웨이퍼가 사양길에 접어들어 생산 장비 수급도 어렵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8인치 웨이퍼의 수요 급등으로 국내 반도체 제조 업체가 잇단 실적 호황을 기록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은 지난해 순이익 1976억원을 거둬 전년 933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DB하이텍도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전년 대비 66.8% 증가한 399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웨이퍼 크기가 클수록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어 12인치(300㎜)에 비해 구형 취급을 받던 8인치는 최근 반도체 공급난으로 몸값이 다시 올랐다. 8인치 웨이퍼가 주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구동칩(DDI)나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난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제조사도 생산 능력을 확대했다. 이에 발맞춰 세계 세계 1·2위 웨이퍼 업체 일본 신에쓰화학과 섬코, 대만 FST도 각각 최대 30%가량 가격을 올렸다.

'언택트'(비대면) 흐름이 대세가 되면서 게이밍족이 늘어난 점도 8인치 웨이퍼 수요를 증가시켰다. DDI와 이미지센서, PMIC(파워반도체) 등 게이밍 노트북·PC에 주로 사용되는 부품은 8인치 웨이퍼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



국내 기업들은 올해 초에도 호황이 이어지면서 호실적을 기대하고 있으나 조심스러운 모양새다. 코로나19가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비필수 품목인 가전 소비가 줄고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안정화되면 8인치 웨이퍼 수요가 다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증설을 계획하려 해도 이미 8인치용 생산량이 줄어든 상태여서 '웃돈' 없이는 다시 생산량 확대가 어렵다.

8인치용 장비 수급이 어려운 점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8인치 웨이퍼 자체가 고부가가치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데다 수익성도 낮고 사용처도 제한돼 있다"라며 "최근의 수요 급등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섣불리 큰 돈을 들여 투자를 확대하다가 손실을 입을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 흐름 자체가 12인치로 넘어간 상태여서 8인치용 장비는 구하기도 힘들다"라고 했다.

국내 유일의 웨이퍼 전문 제조기업인 SK실트론은 전체 제품 생산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8인치 웨이퍼 생산량을 늘리지 않을 계획이다. SK실트론 관계자는 "8인치 웨이퍼 생산량을 늘리거나 장비 구입에 추가 투자할 계획은 현재 없다"라며 "8인치 웨이퍼는 크기 때문에 초미세 공정 적용이 어려워 미래수익에 한계가 있다"라고 했다.


생산장비 증설 대신 8인치 장비를 갖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인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8인치(200㎜) 웨이퍼 팹 운영기업인 키파운드리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키파운드리는 12인치 웨이퍼 팹과 첨단제품 공정기술이 없는 대신 월 9만장 내외의 8인치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갖췄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의 웨이퍼 생산 능력은 최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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