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정치적 과잉대표와 제론토크라시

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럭스로보 고문) 2022.03.3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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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박빙이던 20대 대통령선거는 근소한 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사전투표율도 역대 최고치인 36.93%를 기록할 만큼 정치적 열기가 뜨거웠다. 윤석열 당선인은 48.56%를 득표, 47.83%에 그친 여당 후보를 앞섰지만 표 차이는 0.73%포인트, 24만여표에 불과했다. 표 차이가 아무리 작아도 민주적 절차로 치른 선거결과는 당연히 존중돼야 하며 권력 또한 합법적이다.

현대민주주의는 선거로 대표를 뽑고 다수결원칙으로 지탱되는 제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며 선거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반에 못 미치는 지지로 획득한 합법적 권력이 행사하는 정책이 모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근본적 한계 때문에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대통령제하의 대통령은 입법·사법부에 비해 비대한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제왕적 권력을 벗어날 수 없다. 권력이란 절대적 힘이라서 권력자가 내려놓는다고 해서 내려놓아지는 건 아니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현대 한국 민주주의의 총체적 한계를 보여준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이 직접 정책결정과 집행에 참여할 수 없기에 국민의 대표를 뽑아 대신 권력을 행사하게 하는 간접 민주주의다. 그 핵심은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는가에 있다. 국민의 뜻이 제대로 대표되지 않거나 선출된 대표가 세대별, 지역별, 성별 대표성을 띠지 못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근본적 결함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올 1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보건사회연구원이 주최한 '미래전망 전문가포럼'에서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세대간 정치 대표성'에 대해 발표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건 중장년층과 청년층의 대표성 격차의 심각성이다.



가령 제21대 국회의원 중 50대가 전체의 59%나 되고 60대는 23%, 40대는 12.7%다. 50대 이상 의원은 72%인데 30대, 20대는 각각 3.7%, 0.7%에 불과하다. 선출직 정치인 구성은 고령층은 과잉대표되고 청년층은 과소대표되는 현상이 극명하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의회도 마찬가지다. 2018년 민선 7기 기초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은 58세고 전체 기초의원 과반은 50대 남성이다. 반면 2030세대 청년 기초의원은 10분의1도 안 된다.

이번 대선은 어땠는가. 지역, 세대, 젠더, 이념 등 갈등의 종합판이었고 연령층별 표 쏠림현상도 두드러졌다. 유권자 4419만명 중 만18세부터 20대까지 청년층은 19.1%, 30대 15.1%, 40대 18.5%, 50대 19.5%, 60대 이상은 29.8%였다. 20대 이하 청년보다 60대 이상 실버 유권자가 더 많다.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로 고령층 비중이 점점 커질 거라는 점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도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 일색인 걸 보면 과연 다양한 연령층의 이해가 균형 있게 반영될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이 계속되고 고령화가 가속된다면 미래에는 필연적으로 말로만 미래 주역이라 추켜세우는 청년층이 과소대표될 수밖에 없다. 중년 이상 고령층이 점점 과잉대표되는 정치는 가히 실버 민주주의라고 할 만하다.

원로원이 지배한 로마 시대, 성직자와 귀족이 절대권력을 갖던 중세처럼 자칫 고령층이 사회체제 전반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특정 연령층이 권력을 독과점하고 과잉대표되는 건 민주적 대의제도가 아니다. 과잉대표는 곧 과잉권력이며 집중된 권력은 부패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원천은 견제와 균형, 그리고 다양성에 있다. 권력은 분산될수록, 연령층의 스펙트럼은 넓을수록 민주주의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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