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길우 부원장
기술패권 경쟁격화화, 디지털 대전환,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우리를 둘러싼 위협과 위기의 목록은 끝이 없다. 10대 비전, 44개 추진목표로 이뤄진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코로나19 극복, 회복과 도약' '행복경제시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담대한 미래, 자율과 창의가 존중되는 나라'와 같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기반의 국가혁신체계(NIS) 개조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기획과 탄탄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
미국도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을 내각 수준으로 확대하고 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했다. 조직확대와 함께 사회학자를 부실장으로 임명해 OSTP가 과학기술 자문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국정 전반에 관여하도록 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처럼 과학기술정책을 좁은 범위의 R&D정책이 아닌 국가 전반에 걸친 혁신정책으로 확장했다.
문재인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출범 당시부터 반쪽짜리 부활이라는 평가와 함께 소위 '선수심판론'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선수심판론은 국가R&D사업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선수'(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심판'(예산 배분·조정 및 예비타당성조사) 역할까지 맡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논리다. 과학기술 성과를 적시적기에 경제·사회적 가치로 전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엄혹한 오늘날 현실에 걸맞지 않은 해묵은 논쟁이다. 발상을 바꿔보면 어떨까. 국가R&D의 선수는 대학, 출연(연), 기업에서 묵묵히 R&D를 수행하는 연구자이지 정부부처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국가R&D사업의 심판이다. 부처별로 전문영역을 명확히 하고 중복방지와 연계·협력을 위한 종합조정 기능만 잘 작동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적극적인 과학기술 투자와 전 국민의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선진국 초입에 들어선 우리 앞에 있는 도전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과학기술 기반의 국가사회혁신체계를 바탕으로 기술패권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과학기술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G5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