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바이오산업 과실, 멀리 봐야 '제맛' 본다

머니투데이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주) 대표이사 2022.03.2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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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평균 성공률을 적용하면 신약후보물질 10개가 임상에 진입하면 그 가운데 하나가 식약허가를 받는다. 3상에 진입해도 아직 허가확률이 50% 정도다.

그럼 임상1상 단계 과제 10개를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바로 파이프라인의 개념이다. 10개를 하면 한 과제가 허가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10개 임상과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소요자금이 늘어난다.



위 2가지 상황이 반영된 것이 미국 터프츠대학의 신약 하나당 들어간 연구·개발비용 산정이다. 2019년 터프츠대학 연구진은 허가받은 신약 하나당 26억달러의 연구·개발자금이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과제 하나에 드는 돈이 아니고 모든 실패과제에 들어가는 비용까지를 감안한 금액이다.

사실 한국의 그 어떤 개별 기업도 10여년 동안 누적으로 26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하면서 하나의 신약성공을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SK바이오팜의 성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20여년간 한국은 벤처투자자와 벤처사업가·연구자의 조합으로 '꿈의 신약'에 도전했다. 여기에 규모를 키워가는 '코스닥 시장'까지 '꿈의 실현'에 힘을 보탰다.

벤처사업가·연구자-벤처투자자-코스닥투자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모두 완성됐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매우 커다란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한창 좋았던 지난해 5월 코스닥150에 편입된 150개 기업 중 36곳이 바이오 관련 기업이라고 하며 150개 기업 시가총액의 합 175조3000억원 중 59조7000억원으로 34%를 차지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꽤 줄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섹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높은 실패율과 혁신신약 달성을 위한 거대한 자본규모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중요한 산업섹터로 자리매김한 제약·바이오의 장기발전을 위해 몇 가지 화두를 던져본다.

첫째, 벤처캐피탈의 3~5년 앞을 본 투자들이 현재 바이오텍들의 탄생과 성장을 가지고 왔듯이 상장 바이오텍들의 3~5년을 보고 깊이 있는 검토 후 지분을 매입하고 장기적 관점을 유지해줄 '장기 전문' 혹은 '장기 비중이 높은' 기관투자자들이 필요하다. 코스닥 시장의 기관투자자 모두가 장기 전문 투자일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단기 위주 투자일 경우 상장한 바이오텍들의 '경영 시야'도 단기로 맞춰지면서 장기 경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둘째, 상장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코스닥 시장 규정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깊이 고민할 때다. 특히 상장유지조건은 코스닥 상장 1호 바이오텍(마크로젠)이 상장한 2000년 이후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매출요건을 맞추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하기'는 20년째 변함이 없다. 진지하게 글로벌 수준에서 신약을 개발하다 보면 적자규모가 커진다. 진전된 개발단계 및 누적되는 데이터로 기업가치는 올라가지만 상장유지조건 미비로 관리종목에 편입될 위험도 함께 커지는 경우가 많다. 모험하라고 독려한 뒤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야단치는 격이다.

셋째, 상장기업들이 업계 선순환을 위한 역할을 고민할 때다. 제한된 인재풀과 투자풀로는 설립된 모든 기업이 '경쟁력 있는 인력구조와 필요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 상장 바이오텍들이 주도가 된 인수·합병은 산업계 선순환의 마지막 '미싱링크'다. 우물 안 경쟁이 아닌 글로벌 경쟁이 되려면 최소규모를 갖춰야 한다. 업계 내 인수·합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초기기업들의 기대치 조정도 필요하다.

가을과 겨울은 다음 봄과 여름을 준비하는 시기다. 화려함이 잠시 사라졌을 때 우리는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새봄에 더 단단히 성장해 있을 한국 바이오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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