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주유소에 표시된 휘발유 가격./사진=AFP
그러나 대러 제재의 핵심 카드인 에너지 제재를 두고 서방 진영에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에선 에너지난을 우려한 신중론이 우세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역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원유 수입 금지가 세계 경제와 중간 선거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조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날 CNN에 출연해 "현재 유럽 동맹과 러시아 원유 수출 금지에 관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양측 시장에 충분한 원유 공급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천연가스의 40%, 원유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당장 제재에 나서기 곤란한 상황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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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을 일부러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왔다"며 "유럽에 난방, 이동, 전력, 산업을 위한 에너지 공급은 현재로서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보장될 수 없다. 독일은 지난 몇 달 동안 유럽연합(EU) 안팎의 파트너들과 러시아산 에너지의 대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하룻밤 사이에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헝가리 정부도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너지 제재를 둔 서방 진영 간의 입장차는 이날 런던에서 열린 영국·캐나다·네덜란드 정상회담에서도 감지됐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즉시 중단하면 유럽 등 세계 공급망을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AFP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것도 바이든 행정부가 고심하는 이유다. 물가 폭등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원유 금수 조처는 바이든 행정부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포스트(WP)는 칼럼을 통해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에 덫을 놓고 있다"며 "러시아 에너지 제재를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유가 상승 등 경제적 여파에 대해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 제재 카드를 버릴 수는 없다. 러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이 푸틴 대통령보다 유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X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6%가 러시아 침공을 이유로 공화당에 투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드리탄 네쇼 해리스X 대표는 "경제 제재가 느리게 진행되면서 유권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에 약하다고 믿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위기가 계속되면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미지근한 행동을 심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독자 제재 카드도 고려 대상이 됐다. 블룸버그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적어도 초기에는 유럽 동맹의 참여 없이 독자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럽 동맹의 동참 없이는 제재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에 불과해서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에너지 전문가 니코스 차포스는 WP에 "솔직히 말하면 (미국 독자 제재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