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 사람이 더 아플라"…'푸틴 돈줄' 석유 제재 놓고 엇갈린 동맹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22.03.08 15:45
글자크기

[우크라 침공] '러시아 의존' 유럽은 반대,
지지율 고전 바이든 정부 '독자 제재' 고심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주유소에 표시된 휘발유 가격./사진=AFP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주유소에 표시된 휘발유 가격./사진=AFP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방이 에너지 제재 카드를 꺼내 들 준비를 하고 있다. 러시아가 세계 3위 산유국인 만큼 원유 수출 통로를 막으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부의 돈줄도 막힐 가능성이 커서다. 미국 의회는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 성안 작업에 나섰고, 이르면 8일(현지시간) 하원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대러 제재의 핵심 카드인 에너지 제재를 두고 서방 진영에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에선 에너지난을 우려한 신중론이 우세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역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원유 수입 금지가 세계 경제와 중간 선거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조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원유 수입 막자는 미국 의회, 당장은 힘들다는 유럽
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의 세금 및 무역 관련 상·하원 핵심 인사들은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러시아를 국제 경제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원유 수입 금지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미 하원은 이날 중에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고 러시아와 일반 무역을 중지하는 법안을 완성해 이르면 8일 처리할 예정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날 CNN에 출연해 "현재 유럽 동맹과 러시아 원유 수출 금지에 관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양측 시장에 충분한 원유 공급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처는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세계 경제에도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에너지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조처라고 거론해왔으나,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인해 마지막까지 시행을 미뤄왔다.

"때린 사람이 더 아플라"…'푸틴 돈줄' 석유 제재 놓고 엇갈린 동맹
미국의 러시아 석유 제재 움직임에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60달러 중후반이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 담당 부총리는 러시아산 석유를 거부하면 세계시장에 재앙적 결과가 닥쳐 유가가 배럴당 3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천연가스의 40%, 원유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당장 제재에 나서기 곤란한 상황이어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을 일부러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왔다"며 "유럽에 난방, 이동, 전력, 산업을 위한 에너지 공급은 현재로서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보장될 수 없다. 독일은 지난 몇 달 동안 유럽연합(EU) 안팎의 파트너들과 러시아산 에너지의 대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하룻밤 사이에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헝가리 정부도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너지 제재를 둔 서방 진영 간의 입장차는 이날 런던에서 열린 영국·캐나다·네덜란드 정상회담에서도 감지됐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즉시 중단하면 유럽 등 세계 공급망을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AFP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AFP
바이든 행정부, 에너지 제재에 신중한 이유
유럽 국가들이 미온적 태도에 바이든 행정부도 일단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며 "관련한 내부 논의가 유럽 동맹 및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것도 바이든 행정부가 고심하는 이유다. 물가 폭등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원유 금수 조처는 바이든 행정부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포스트(WP)는 칼럼을 통해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에 덫을 놓고 있다"며 "러시아 에너지 제재를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유가 상승 등 경제적 여파에 대해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 제재 카드를 버릴 수는 없다. 러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이 푸틴 대통령보다 유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X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6%가 러시아 침공을 이유로 공화당에 투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드리탄 네쇼 해리스X 대표는 "경제 제재가 느리게 진행되면서 유권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에 약하다고 믿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위기가 계속되면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미지근한 행동을 심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독자 제재 카드도 고려 대상이 됐다. 블룸버그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적어도 초기에는 유럽 동맹의 참여 없이 독자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럽 동맹의 동참 없이는 제재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에 불과해서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에너지 전문가 니코스 차포스는 WP에 "솔직히 말하면 (미국 독자 제재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