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DC 팬들에게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토니 스타크가 나노 테크로 온 몸을 두르고 캡틴 아메리카가 성조기를 본뜬 비브라늄 방패를 들고 다녀도 DC 팬이 견딜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겐 배트맨이 있다’는 자부심 그 하나로 버틴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런 배트맨도 DC 팬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적이 몇 번 있다. 발 킬머 주연의 ‘배트맨 포에버’나 조지 클루니 주연의 ‘배트맨과 로빈’ 등이 DC 팬들의 소위 ‘배트맨부심’을 무참히 깨뜨린 대표작이다.
'더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더 배트맨’은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 나아가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와도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액션도 존재하고 첨단 기술도 존재하지만 이 작품에는 순간이동도, 인피니티 건틀릿 같은 아이템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더 배트맨’을 슈퍼 히어로 영화로 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 작품은 배트맨이 자경단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흐른 시점을 다룬다. 그리고 음침하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할로윈 시기를 다룬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호평을 받은 ‘배트맨 이어원’, ‘롱 할로윈’의 분위기를 적극 차용해 ‘DC는 역시 어두워야 제 맛’이라는 명제가 옳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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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더 배트맨’은 극이 더해질수록 추리물 혹은 스릴러 장르임을 강조함으로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온 배트맨이 ‘가짜’였다는 걸 알린다. 배트맨은 박쥐 옷을 차려 입고 우주급 외계인과 싸우는 일이 본업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탐정’(The World's Greatest Detective)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캐릭터라는 걸 각인시키는 것이다.
'더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더 배트맨’의 또 다른 탁월한 선택을 꼽자면 셀리나 카일(조이 크래비츠)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쉼 없이 비가 내리는 고담시의 거리, 단서를 찾기 위해 클럽을 찾은 탐정, 그 클럽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의 등장. 셀리나 카일의 등장으로 인해 ‘더 배트맨’은 매우 매력적인 탐정 소설에서 더욱 더 매력적인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로 진화한다. 여기에 셀리나 카일이 지닌 출생의 비밀(?)까지 더해지면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가 주르륵 흘려버린 어느 드라마 속 캐릭터의 심정도 십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더 배트맨’이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로 진화하면서 로버트 패틴슨의 음울한 얼굴은 더욱 빛을 발한다. 아주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이 ‘창백하고 음울한 얼굴’ 때문에 배트맨으로 낙점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더 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은 지금까지 계속 강조해 왔던 것처럼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 아니 이건 가까운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어엿한 추리 스릴러물이다. 다만 탐정이 박쥐 옷을 입고 다니는 특이 취향일 뿐.
따라서 두뇌를 쓰는 것보다 속이 뻥 뚫리는 액션을 원한다면 다른 영화를 관람할 것을 추천 드린다. 그리고 배트맨의 얼굴을 더 좋은 화질로 보고 싶어서 아이맥스(IMAX)로 보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액션 쾌감을 느끼겠다고 4DX로 보고 그러진 말자. 아껴야 잘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