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갈린 '더 배트맨'을 위한 DC덕후의 항변

머니투데이 영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03.0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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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팬들의 자부심인 배트맨의 탐정 변신?

'더 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더 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더 배트맨’ 셜록이 박쥐 옷을 입고 밤에만 돌아다닌다면…

DC 팬들에게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토니 스타크가 나노 테크로 온 몸을 두르고 캡틴 아메리카가 성조기를 본뜬 비브라늄 방패를 들고 다녀도 DC 팬이 견딜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겐 배트맨이 있다’는 자부심 그 하나로 버틴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런 배트맨도 DC 팬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적이 몇 번 있다. 발 킬머 주연의 ‘배트맨 포에버’나 조지 클루니 주연의 ‘배트맨과 로빈’ 등이 DC 팬들의 소위 ‘배트맨부심’을 무참히 깨뜨린 대표작이다.



DCEU 벤 에플렉의 배트맨은 또 어떤가. 잡졸에게도 무참히 털리는 것도 모자라 슈퍼맨을 죽이겠다고 덤벼들더니 엄마 이름이 마사(Martha)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친구가 되는 광경을 목도했으니 뒷목이 저려오는 느낌이다.

'더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더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처럼 배트맨은 어느새 DC의 자존심에서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들려온 로버트 패틴슨 주연,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은 문자 그대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관객들과 만났다.

‘더 배트맨’은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 나아가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와도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액션도 존재하고 첨단 기술도 존재하지만 이 작품에는 순간이동도, 인피니티 건틀릿 같은 아이템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더 배트맨’을 슈퍼 히어로 영화로 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 작품은 배트맨이 자경단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흐른 시점을 다룬다. 그리고 음침하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할로윈 시기를 다룬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호평을 받은 ‘배트맨 이어원’, ‘롱 할로윈’의 분위기를 적극 차용해 ‘DC는 역시 어두워야 제 맛’이라는 명제가 옳았음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더 배트맨’은 극이 더해질수록 추리물 혹은 스릴러 장르임을 강조함으로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온 배트맨이 ‘가짜’였다는 걸 알린다. 배트맨은 박쥐 옷을 차려 입고 우주급 외계인과 싸우는 일이 본업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탐정’(The World's Greatest Detective)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캐릭터라는 걸 각인시키는 것이다.

'더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더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더 배트맨’은 이를 위해 공포 가스를 만드는 스케어 크로우나 하수구에 사는 돌연변이 킬러 크록 같은 캐릭터들이 아닌 리들러(폴 다노)를 주요 빌런(악당)으로 내세웠다.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내용을 알 수 없는 암호,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리들러의 행보를 배트맨이 쫓게 함으로서 ‘탐정’ 배트맨의 매력을 관객 스스로 깨닫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을 엔터테인먼트가 가득한 액션물이 아니라 추리 스릴러로 만든 것도, 리들러를 빌런으로 내세운 건 실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더 배트맨’의 또 다른 탁월한 선택을 꼽자면 셀리나 카일(조이 크래비츠)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쉼 없이 비가 내리는 고담시의 거리, 단서를 찾기 위해 클럽을 찾은 탐정, 그 클럽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의 등장. 셀리나 카일의 등장으로 인해 ‘더 배트맨’은 매우 매력적인 탐정 소설에서 더욱 더 매력적인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로 진화한다. 여기에 셀리나 카일이 지닌 출생의 비밀(?)까지 더해지면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가 주르륵 흘려버린 어느 드라마 속 캐릭터의 심정도 십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더 배트맨’이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로 진화하면서 로버트 패틴슨의 음울한 얼굴은 더욱 빛을 발한다. 아주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이 ‘창백하고 음울한 얼굴’ 때문에 배트맨으로 낙점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더 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더 배트맨',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다크 나이트’ 3부작의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이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목소리까지 긁어대는 배트맨이었다면 반대로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복수에 굉장한 의욕을 보이는(?) 허무주의자다. 이 허무주의자 배트맨이 극 중후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 된 작품의 분위기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은 지금까지 계속 강조해 왔던 것처럼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 아니 이건 가까운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어엿한 추리 스릴러물이다. 다만 탐정이 박쥐 옷을 입고 다니는 특이 취향일 뿐.

따라서 두뇌를 쓰는 것보다 속이 뻥 뚫리는 액션을 원한다면 다른 영화를 관람할 것을 추천 드린다. 그리고 배트맨의 얼굴을 더 좋은 화질로 보고 싶어서 아이맥스(IMAX)로 보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액션 쾌감을 느끼겠다고 4DX로 보고 그러진 말자. 아껴야 잘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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