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부르짖던 독일, 이젠 옆나라서 전기 꿔오는 신세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세종=안재용 기자, 세종=민동훈 기자 2022.03.03 15:55
글자크기

[MT리포트] 이념적 '탈원전'을 넘어③

편집자주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흔들림이 감지된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선 당분간 원전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는 데 문재인 대통령도 공감했다.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 '감원전' '복원전' 등의 백가쟁명 속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적의 원자력 정책을 찾아본다.

[베를린=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베를린 총리실에서 열리는 각료회의에 앞서 올라프 숄츠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아 들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월 선거 이후 새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마무리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각료회의가 총리로서 마지막으로 여겨져 이 꽃다발을 받았다. 2021.11.24.[베를린=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베를린 총리실에서 열리는 각료회의에 앞서 올라프 숄츠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아 들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월 선거 이후 새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마무리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각료회의가 총리로서 마지막으로 여겨져 이 꽃다발을 받았다. 2021.11.24.


2011년 최악의 원전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독일과 프랑스는 함께 탈원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독일과 프랑스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탈원전의 결과로 전력 부족과 전기요금 상승에 허덕이고 반면 프랑스는 이런 문제를 피해 복원전으로 선회한 지 오래다.

3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33개국이다. 이 가운데 정부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탈원전 정책을 펴는 국가는 단연 독일이다. 2022년 '원전 제로화' 정책을 추진 중인 독일은 현재 원전 3기만을 가동하고 나머지 33기는 폐쇄했다. 원전 발전량은 4.05GW로 세계 14위에 머물러 있다. 독일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전력을 주로 조달하는 '에너지 전환'을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기본방향은 독일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오늘날 독일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20년 기준으로 평균 kWh(키로와트시)당 389.2원으로 프랑스 219.5원에 비해 77% 이상 비싸다. 원전 대신 비중을 높인 신재생 에너지는 그 특성상 발전 효율이 낮고 불안정하다. 이 때문에 독일에선 발전 비용 부담이 커졌고,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프랑스 등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독일은 2020년 기준으로 4만7600GWh(기가와트시)의 전기를 주변국으로부터 사왔다.

특히 지난 겨울 대규모 풍력단지가 몰려있는 북해 연안의 바람이 줄어들자 풍력발전량이 10% 가량 줄었다. 원전을 포기한 독일이 할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은 천연가스와 석탄발전의 일시적 확대다. 천연가스와 석탄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먼 에너지원이다.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밸브를 잠그면 독일은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탈원전' 부르짖던 독일, 이젠 옆나라서 전기 꿔오는 신세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이미 독일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이미 독일 연방 감사원은 지난해 3월 정부와 의회에 제출한 '에너지 전환 특별 보고서'를 통해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에 따른 전력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감사원은 치솟는 전기요금이 중소기업과 가계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나마 독일은 지리적 위치상 주변국으로부터 전기를 사올 수 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비싼 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경제력 덕에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독일이 원전에서 벗어나려 가장 많은 전기를 사오는 국가는 역설적으로 원전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프랑스다. 현재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량은 61.37GW(기가와트)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집계됐다.

한때 독일과 함께 탈원전을 추진했던 프랑스는 이미 복원전으로 정책방향이 바뀌었다. 2028년까지 기존 원전 부지에 새 원자로 6기를 짓고 2050년까지 8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소형모듈화원전(SMR)에 10억 유로를 투자하고 노후 원전 수명도 50년까지 연장이 가능토록 했다. 프랑스가 복원전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달리 사용 후 핵연료 처리장을 구축하고 있어서다.


프랑스는 EU(유럽연합) 내 복원전 기조를 주도하고 있다. EU가 지난달 발표한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에 원전을 포함한 것도 프랑스가 강력히 주장한 때문이다. 프랑스는 기후위기 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전환에 있어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위로 내세웠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의 의뢰로 작성된 '발전원료별 전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 of Electricity Generation Options·LCA) 보고서도 프랑스가 주도하는 복원전 전선에 힘을 보탰다.

LCA 보고서는 원전에 대해 방사선 노출량을 제외한 전 지표에서 친환경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특히 온실가스 부문에서 원자력 발전은 kWh(키로와트시당) 5.1~6.4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60㎿(메가와트) 이하 수력 발전은 이보다 높은 kWh당 이산화탄소 6.1~11g을 배출한다. 탄소중립에 가장 적합한 전원이라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후변화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명제 앞에 프랑스 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의 복원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행정명령에 무공해 전력으로 원전을 명시했다. 노후한 원전의 보수와 수명연장 등을 위해선 6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입키로 했다. SMR 개발에 가장 앞서 있는 나라도 미국이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를 만든 '원전 종주국'이지만 1990년대 이후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인류 공동의 목표가 제시되자 새로운 원전 건설과 SMR 개발을 선언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학과 교수는 "프랑스는 원전 발전 비중이 70% 가량인데도 원전을 추가로 늘리며 탄소중립 사회 전환에 대응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영국 등도 다시금 원전을 늘리는 것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탄소중립 방안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