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정폭력에 극단시도까지 했어도..."처벌 원치않아 엄마니까"

머니투데이 양윤우 기자, 김성진 기자 2022.03.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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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상)] ②가족이라는 이름으로…음지로 들어간 가정폭력

편집자주 코로나19로 공공이 분담하던 역할이 제기능을 못하면서 가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일상화에 따른 부작용도 커졌다. 매 맞는 아이, 학대당하는 부모가 있어도 주변에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홀로 살던 누군가 죽어도 알아채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19가 만든 사각지대, 이른바 '코로나 그레이존'에 갇힌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짙어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짚어본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사진= 이미지투데이


2년 전부터 엄마의 짜증이 부쩍 심해졌다. 손찌검을 하는 날도 잦아졌다. 욕을 하는 횟수도 많아졌고 술을 마시면 술을 뿌리기도 했다. 경기도에 사는 21세 여성 이밝음씨(가명)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심해진 것은 이씨와 어머니가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터다. 그전에도 술을 마시면 욕을 하거나 술주정을 부리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이씨 어머니의 남자친구도 이씨의 학대에 가세했다.



참다못한 이씨는 결국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이씨에게 경찰은 어머니에 대한 처벌 의사를 물었다. 이씨는 거부했다. 어머니에 대한 처벌을 거부한 이유를 묻자 이씨는 "엄마니까요"라고 답했다. 이씨는 어머니가 처벌받기 보다는 치료되기를 바랐다.

극단적 선택 후 병원 이송되기도...우울증 약 먹을 수밖에
/삽화=이지혜 디자이너/삽화=이지혜 디자이너


이씨의 기억속에 어머니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때부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면서 이씨의 어머니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혼자 호프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아 얼마 후 문을 닫았다. 그후부터 이씨의 어머니는 술로 상실감을 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지더니 언제부턴가 술을 마시면 이씨에게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COVID19) 유행이 시작되면서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어머니의 폭력은 더 심해졌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의 새 남자친구도 이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지겨웠던 이씨는 어머니의 남자친구에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남자친구는 'X가지가 없다'며 이씨의 머리를 때리더니 던질 듯 의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같은 자리에 있던 어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도 술잔만 기울였다.


지난해 6월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이씨를 또 한번 때리자 이씨는 이들을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처벌을 원하냐'고 물었지만 이씨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어머니가 의지할 대상이 없다는 생각에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다.

경찰이 다녀간 후에도 폭력은 계속됐다. 어머니의 알코올 의존증은 더 심해졌다. 먹던 술을 이씨에 뿌리는 버릇도 생겼다. 결국 이씨는 112에 한번더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를 위해 이씨에게 "임시 쉼터로 가겠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집에 남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어머니의 폭력은 지속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이씨는 집이 있는 상가건물 4층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1층 천막에 부딪힌 뒤 땅에 추락한 이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이씨는 "엄마와 엄마 남자친구가 술을 마시며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폭력에 이씨는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다. 이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해 지금도 2주에 한번씩 새 약을 처방받는다. 이씨는 "잘 때 가위에도 자주 눌리고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디자인을 공부한다.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유망하지만 지속적인 폭력에 학업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이씨는 "엄마와 엄마 남자친구 때문에 집이나 밖에서도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처벌은 원하지 않아...술이 문제"...하지만 알코올 중독치료 강요할 수 없어
이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어머니에 대한 처벌은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가정폭력으로 직접 경찰에 신고한 횟수만 4번이지만 모두 '처벌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래도 낳아주신 엄마인데 처벌당하는 건 싫다"며 "내가 감싸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가정폭력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처벌할 수 없다.

경찰로선 형사 처벌 외 가정폭력 문제에 개입할 방법이 많지 않다. 경찰은 가정폭력 재발 우려가 있으면 1~6호로 이뤄진 임시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 임시조치에는 △피해자 거주지에서 퇴거 등 격리 △100m 이내 접근금지 △문자, 전화 등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이 있다.

하지만 말그대로 '임시' 조치일 뿐이다. 현행법상 접근금지에 해당하는 임시조치 1~3호는 2개월 간 효력이 유지되며 최대 2회 연장할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위해 마련된 쉼터 역시 이씨의 입장에서는 임시 조치일 뿐이다. 이씨는 "어차피 집에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며 "어차피 엄마랑 평생 떨어져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며칠 떨어져 지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이씨가 원하는 건 어머니의 치료다. 어머니는 현재 '슬플 때 술을 마시는 건 알코올 중독이 아니다'라며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현행법상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려면 시장, 군수, 구청장의 허가를 받거나 보호자 2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씨에 친언니가 있지만 2년 전 독립해 친모 입원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 이씨는 "엄마가 스스로 입원하지 않는 한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강제치료 고민해야 할 시점"
전문가들은 이씨 어머니에 대한 치료를 강제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멈춰선 안된다"며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 등이 결합된 심각한 문제 같다. 이런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법적으로 경찰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가정폭력이 비일비재하다"며 "당사자가 원치 않아도 강제로 치료할 법적인 근거를 조금씩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알코올에 대한 관대한 인식이 알코올중독에 대한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블랙아웃 이른바 '필름끊김현상'에 대해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알코올 중독의 중요 지표로 사용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블랙아웃을 술 마신 뒤 후일담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치료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전 교수는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어도 병원 진단에 대한 거부감, 진단을 받아도 부정하는 인식이 치료를 방해하는 근본적 원인"이라며 "지역사회 인식 개선과 더불어 알코올 중독 치유센터에 쉽게 접근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강제치료에 대해서는 인권유린의 소지가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은 "강제치료는 잘못하면 인권유린이 될 수 있다"며 "가정폭력이 사건화되면 처벌하는 과정에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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