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치고 판매직원엔 노예계약.. 탈불법 잇따르는 유통현장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2022.03.01 18:00
글자크기

[MT리포트] 위기의 휴대폰 판매점 ④'환골탈태' 필요한 판매점
통신사 대리점-판매 직원 간 '무한책임계약' 개선 목소리
"자급제·온라인 구매 증가 상황에서 시대착오적 관행"

편집자주 국내 모바일 시장의 한축을 차지하던 휴대폰 유통업이 변곡점을 맞았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개통으로 기존 오프라인 유통망의 위상이 하락해서다. 또 알뜰폰 확산, 제조사간 경쟁 약화, 이통사의 탈통신, 일부 대리점 일탈도 이를 부추긴다. 고객들도 과거와 달리 온라인 개통에 익숙해졌다. 격변기를 맞은 이동통신 유통서비스의 개편 방향을 짚어본다.

5G 서비스 개통 100일이 되어가는 가운데 시민들이 10일 오후 서울 시내의 이동통신사 대리점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5G 서비스 개통 100일이 되어가는 가운데 시민들이 10일 오후 서울 시내의 이동통신사 대리점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초년생 A씨(21)는 친구 소개로 한 통신사 대리점에 입사했다. 주 6일,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휴대폰 등 이동통신 상품 판매, 매장 청소가 주된 업무였다. 월 기본급 120만원과 판매 건마다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실적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넉 달 동안 인센티브는 커녕 기본급조차 한 푼도 못 받았다. 생활비가 없어 550만원을 '가불'받았고, 회사는 A씨의 가불금 및 각종 고객민원에 따른 손해배상금까지 '약 1900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취지의 차용증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도록 했다.

A씨는 이후 1년 6개월 동안 월 50만~200만원을 급여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빚을 모두 갚았고, 입사 2년 5개월만에 퇴사했다. 드디어 족쇄를 벗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퇴사한 뒤 접수된 고객 불만에 대해 'A씨가 판매한 상품이니 해결하라'는 회사의 요구가 이어졌다. A씨가 고객에게 약속했던 단말기 할부지원금을 주지 않았고, 기존 미납요금도 처리하지 않는 등 문제가 있어 1780만원을 더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A씨는 끝없는 '채무의 굴레'에 극심한 우울증, 대인기피증, 공황장애까지 겪게 돼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프리랜서' 신분의 판매원들…퇴사해도 '무한책임'
한 통신사 대리점과 판매 직원 간 위탁 판매 및 영업운영계약서 중 일부. 한 통신사 대리점과 판매 직원 간 위탁 판매 및 영업운영계약서 중 일부.
이처럼 휴대폰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고객에대해 '눈속임'하거나 종사자를 압박하는 등 탈법 사례가 늘고있다

A씨 사례의 경우, 판매 직원을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프리랜서)'로 분류하고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계약 관행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고, 실제 과실이 없더라도 계약에 따라 상품 판매의 '무한책임'을 지게 된다. 실제로 한 통신사 대리점과 판매직원 간 계약서에는 "을(판매직원)이 체결한 계약 건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고객 민원은 을에게 책임이 있다"거나 "(대리점-직원 간) 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을의 판매건으로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 지속 적용된다"고 명시해 '퇴사 후 무한책임'이 가능해졌다.



이 같은 무한책임 규정은 대리점의 관리 책임을 원천 배제한다는 허점이 있다. 윤지영 변호사는 "판매직원은 계약 성사 시에만 건당 수수료를 받지만 대리점은 계약 성사 시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고객이 계약을 유지하는 내내 통신요금의 일부를 가져간다"며 "대리점 측에서도 고객의 불만을 잠재우고 사후 관리할 필요성이 큰데, 고객 관리 비용을 모두 직원에게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조만간 유사사례를 모아 이 같은 '무한책임 계약'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법 위반으로 신고할 예정이다.

장애인 등치고, 반납 폰서 정보유출…계속되는 '탈법'
지나친 호객행위와 눈속임 등 부당 영업행위는 꾸준한 비판의 대상이다. 특히 지적장애인 대상의 고가 휴대폰 또는 요금제 강매는 잊을 만 하면 발생한다. 일례로 지난해 10월에는 지적장애 3급인 한 고객을 대상으로 무려 4년 간 8차례에 걸쳐 휴대폰 8대, 태블릿 PC 2대 등을 강매해 1000만원에 달하는 피해를 준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중 6건의 계약은 고객이 아닌 판매직원이 대리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상희 부의장이 작년 국감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부터 작년7월까지 접수된 장애인 휴대전화 개통 피해는 70건이었고, 이 중 47건(67%)은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에게서 발생했다. 김 부의장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고객 정보 유출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작년 9월에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20대 여성이 휴대폰을 교체하면서 한 통신사 판매점에 반납한 사생활 사진이 유출돼 논란이 일었다. 판매점 직원이 기존 휴대폰을 초기화 한 것처럼 속인 뒤 몰래 고객 휴대폰에서 은밀한 정보를 빼낸 것인데, 업계에선 이른바 '탐정까기'라는 은어가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횡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범죄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비자들이 비판하는 영업 행태는 여러 가지다. "액정필름을 바꿔준다며 휴대폰을 빼앗아 호객행위를 한다" "홀로 다니는 여성만 노려 폰을 가로챈 뒤 가게로 끌어들인다" "현란한 말솜씨로 할인금액이 큰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는 등의 불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업계에선 인센티브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 판매교육 부재 등의 환경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무너진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게 쉽지 않아 보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