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높고 유쾌한 '어른' 홍석천…"올해 나는 '게이팝스타'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02.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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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5-① 홍석천의 'like a rolling stone'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방송인 홍석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방송인 홍석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홍석천은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대한민국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20대에 방송계에 데뷔한 후 30대에 커밍아웃으로 인한 시련을 거쳐 지금은 성공한 방송인이자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이끌어낸 '대한민국 탑 게이'. 대중의 멸시를 존중으로 변화시키기까지 그가 얼마나 구르고 굴렀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 홍석천과 지난달 25일 서울 목동 SBS에서 '찐터뷰'를 가졌다. 50대(1971년생)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롤링스톤(rolling stone)'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멋지게 나이를 들까를 고민하고 있는, 유쾌하고 자존감 높은 어른이었다.

"5월에 앨범 낸다…게이팝스타"
"내가 노래를 잘 못하지만, 재밌게는 할 줄 안다. 그래서 노래를 한번 해볼까 한다. 노래를 하나 만들고 있다. 제목이 '게이팝스타'다. 노래와 춤을 연습해서 여름 전에, 5월쯤 앨범을 낼 거다."



너무 뜻밖의 계획.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홍석천스러운 계획. 지난해 12월 그가 찍은 바디프로필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몸을 만들었으니 이제 그걸 활용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올해 전 세계 게이클럽 투어에 나서겠다"고 한 말이 떠올라 질문을 이어갔다.

- '게이클럽 투어'는 그냥 던진 농담 같은 게 아니었나.

▷"나는 절대 그냥 던지는 게 없다. 던져놓고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생각한 것이다. 엔데믹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미크론 고비를 조금 지나면 각국이 빗장을 풀기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그럼 어떤 콘텐츠를 준비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꿈이 노래를 해보는 것이었다."

성공한 방송인이자 성공한 사업가. 이원일 셰프와 함께./사진=홍석천 인스타그램 성공한 방송인이자 성공한 사업가. 이원일 셰프와 함께./사진=홍석천 인스타그램
- 홍석천다운 계획같다.

▷"사람들이 매주 클럽에 가서 놀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걸 2년 동안 못했다. 응축된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이걸 풀어야 한다. 그럼 내가 프로젝트를 하나 던져보자고 생각했다. 좀 특이하게 앨범을 내 보는 거다. 노래는 지금 가이드가 나와있고, 이걸 내 스타일로 바꾸는 과정에 있다."

절박함이 자존감으로, 그리고 '긍정'이 '유쾌'로
돌이켜보면 그가 대중의 시선을 바꾼 배경에는 이런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있었던 것 같다. 성소수자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고,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비해 대중으로부터 박수를 받는다. 그를 일컫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와 같은 용어가 이런 '홍석천 스타일'을 대변한다.

그는 2000년에 했던 커밍아웃을 두고 "모든 걸 잃었었다. 커리어도, 명성도. 방송도 다 잘렸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자신을 나락에 떨어뜨린 그 경험이 더이상 트라우마가 아닌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트라우마이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유쾌해진 것일까. 어느 쪽이든 보통 자존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 자존감의 원천이 무엇일까.

▷"나는 시골 촌놈(충남 청양 출신)이었다. 항상 도전하고, 용기를 내지 않으면 결실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촌놈이 19세 때 서울로 올라왔다. 거기서 견뎌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정말 절박했다."

- 절박함에서 나온 자존감인가.

▷"커밍아웃을 해서 다 잃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해 재기했다. 이후 20년을 거의 미친놈처럼 일만 했다. 워커홀릭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을 안 하면 보수적인 나라에서 인정도 못받고, 살아남지도 못하고, 결국 해외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절실함이 있었다."

-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내가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건 맞다. 다 잃어도 긍정적이다. 쪼잔한 면도 있겠지만 은근히 통이 크다. 하하하."

- 긍정의 에너지인가.

▷"은근히 망각이 있다. 휴지통 같은 기능이 있다.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을 잘 못한다. 나한테 안 좋은 기억, 안 좋은 일들, 안 좋은 사람들…스스로 기억에서 지우기를 했나보다. 돈을 빌려갔다가 떼어먹은 사람이 몇 년만에 '형 잘못했어요'라고 하면, 그때의 실망감이 잘 기억이 안 나더라. 그럼 그 사과를 또 받아준다. 희한하잖나."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바보같은 순수함?"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오열한 홍석천/사진=채널A 캡처'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오열한 홍석천/사진=채널A 캡처
이런 홍석천이기에 그가 눈물을 보일 때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특히 궁금해한다. '홍석천의 눈물'에는 삶에 대한 함축된 감정이 포함돼 있을 것이란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11월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홍석천이 보인 눈물 역시 크게 이슈가 됐었다. 함께 출연한 개그맨 정형돈의 "나는 석천이 형 만큼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싸워본 적이 있었나? 반성이 된다"는 말 한 마디가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후 십수년 동안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이 연락을 해오면, 거의 모두 답을 해줬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다음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쏟아지는 상담 요청에 잠도 못잘 정도임에도 그는 응대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지만 홍석천은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소통의 문을 안 열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노고를 알아준 정형돈의 말에 감정선이 폭발, 오열을 했다는 것이다.

홍석천은 "성 정체성 문제를 겪는 아이의 아버지·어머니가 내게 먼저 연락을 줄 때도 있다. 그러면 '밥 먹으러 가자'고 하고 아이랑 함께 나에게 오라고 한다. 아이가 나를 보면 놀라서 도망가려고 한다"며 "그걸 붙잡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면 너무 고마운 일들이 벌어진다. 자식을 이해 못했던 부모님들이 '홍석천씨 덕에 시선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며 "아이들 입장에서도 봐보자. 누구에게 얘기도 못하고 죽고 싶었는데, 부모님들의 생각이 확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공포스러운 내일'이 '이야기를 하는 오늘'이 된다. 그런 일들이 너무 좋더라"고 강조했다.

홍석천은 "나에게 아직까지도 바보같은 순수함이 있나보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그런 생각"이라며 "나는 내가 힘들고 죽고 싶을 때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요즘 동생들은 나라는 사람이 있으니 연락을 주는 거 아닌가. 내가 이걸 뿌리치고, 귀찮다고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50대의 키워드는 건강…여전한 '롤링스톤'
그는 10년에 한번 꼴로 인생의 목표를 세운다고 했다. 20대에는 방송가 데뷔, 30대에는 커밍아웃 이후 재기, 40대에는 돈 벌기가 목표였다. 그리고 50대에는 '건강'을 목표로 삼았다. 삶의 자세는 바뀐 게 없다. 변함없이 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여전히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최근 바디프로필에 도전, 놀라운 사진을 남긴 그다.

이런 목표를 잡은 것에 대해 홍석천은 "이전까지는 '나'를 위해 프로젝트를 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이런게 없었다"며 웃었다. '사회적 존재 홍석천이 아닌, 인간 홍석천을 위한 목표는 50대 들어 처음인 건가'라고 물으니 "그렇다. 내가 나에게 너무 인색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50대의 바디프로필/사진제공=홍석천50대의 바디프로필/사진제공=홍석천
그렇다고 그냥 '건강 관리'만 한다는 뜻은 또 아니었다. 홍석천은 '구르는 돌'이 아니었던가. 그는 '건강 콘텐츠'와 관련해 "40대에는 김종국이 있다. 김종국은 내가 못이긴다. 그런데 50대는 무주공산이다. 이 마켓은 내가 먹을 수 있다"며 "바디프로필로 증명했으니, 이걸 비즈니스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하고 있는 '게이팝스타' 프로젝트도 이런 비즈니스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홍석천은 인터뷰 말미에 "멋지게 나이가 먹어가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순간적으로 곱씹으며 "멋지게 나이가 들어가시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나 괜찮죠?"라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나이가 든다는 것'과 관련해 다음처럼 말했다.

"50대에는 자기최면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괜찮아. 다시 출발해도 돼. 아직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았다'는 최면. 희망이 있다는 자기최면.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자기최면만 거는 건 의미가 없다. 실패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도전을 다시 한번 해보는 거다.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겠지."

"내가 꼰대가 됐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멋진 어른, 이야기가 통하는 어른이 되면 만족한다. 나는 MZ세대에게 혼도 내주고, 얘기도 들어주고, 내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있는 사람을 갖다 붙여 '지혜로움'을 알려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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