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고래들이 전부 우연히 그물에 걸려서 죽는다고?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22.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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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바다이야기, 어록(魚錄)(25·시즌1 끝)] 고래고기, 구한말 민족사의 어지러움 속에 생긴 산업

편집자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우리나라 물고기,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그 많은 고래들이 전부 우연히 그물에 걸려서 죽는다고?


울산 방어진이나 포항 장생포에 가면 다른 동네에는 없는 색다른 음식점들이 있다. 바로 '고래고기 전문점'이다. 고래는 바다에서 잡히지만 덩치가 육상 동물보다 더 크고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 그래서 고래고기는 사람만 찾는다는 지역 별미다. 포항과 울산 외에도 부산·경남 지역에선 어렵지 않게 고래고기 파는 집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영남지역에선 고래고기를 '추억의 맛'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고래고기는 한때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도 저렴해서 서민들이 즐기던 친숙한 음식이었다는데, 요새는 웬만한 한우 가격을 뛰어넘는 극악의 가성비를 보이기도 한다. 해마다 정부에서 고래 자원을 보호한다며 각종 고래류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한다던데, 여러 고래고기 전문점에 넘쳐나는 고기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다에 살아도 몸은 육지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고래
참돌고래. /사진=국립수산과학원참돌고래. /사진=국립수산과학원
고래는 흔치 않은 '해양포유류'다. 고래류 외에 물범·물개 같은 '기각류', 국내에는 없지만 듀공이나 매너티 같은 '해우류'도 해양포유류를 대표한다. 해양포유류 중 고래는 특히 수중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진화를 거쳤다. 꼬리와 앞다리는 지느러미 형태로 진화했고 뒷다리는 사라졌으며 골반은 흔적만 남았다. 털이 없어진 대신 피부 밑의 두꺼운 지방층으로 열을 보존한다. 콧구멍은 머리 꼭대기로 옮겨가 '분기공'이 돼 수중에서 머리만 공기 중에 내밀고 호흡할 수 있게 됐다.

유선형의 매끈한 체형과 지느러미 탓에 과거에는 고래를 물고기의 일종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고래는 생김새만 어류와 닮았을 뿐 각 부위의 기원과 내부 형태가 아주 다르다. 가슴지느러미는 다른 포유류의 앞다리 뼈 형태와 구조가 같다. 특히 어류의 꼬리지느러미는 보통 몸통과 같은 방향으로 납작하게 붙어있기에 좌우로 흔들며 유영한다. 반면 고래는 몸통에 수평으로 꼬리지느러미가 붙어 위아래로 흔들며 유영한다.



또 어류는 아가미로 수중의 산소를 흡수하지만, 고래는 허파를 이용해 공기를 직접 들이마신다. 물 밖에서 머리 위의 분기공으로 날숨을 내뿜는 모습은, 멀리서 볼 때 마치 물을 내뿜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는 분기공 위에 있던 약간의 물과 함께 폐에서 나오는 따뜻하면서 강력한 압력을 지닌 날숨이 만들어내는 수증기다. 고래 전문가들은 큰 고래의 '분기' 크기와 모양만 보고도 고래의 종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 주변에 많던 고래…신석기 시대에도 포경한 흔적
지난해 2월 17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에서 근접관람을 신청한 관광객들이 암각화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해 2월 17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에서 근접관람을 신청한 관광객들이 암각화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고래는 크게 수염고래류와 이빨고래류로 나뉜다. 수염고래는 윗잇몸에 이빨 대신 고래수염판(baleen plates)이 촘촘하게 박혀있어 먹이를 걸러먹는다. 우리 바다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밍크고래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 등 15종류가 있다. 이빨고래류는 말 그대로 이빨을 가진 고래류로 종류에 따라 이빨의 크기나 모양과 개수가 다양하다. 향고래, 범고래, 참돌고래, 큰돌고래, 상괭이 등이 이빨고래류에 속하며 전세계에 80여 종이 서식한다. 고래류를 단순히 크기로 구분할 때는 4m를 넘어가면 고래(whale), 작으면 돌고래(dolphin 혹은 porpoise)로 부른다. 돌고래는 다시 주둥이와 이빨 모양으로 'dolphin'과 'porpoise'로 나누는데 우리말로는 각각 참돌고래류와 쇠돌고래류라고 부른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고래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 울주군 대곡천변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신석기-청동기시대에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포경 활동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래를 잡기 위해 배를 타고,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고, 고래를 양륙해 해체하는 장면과 함께 떼 지어 이동하는 긴수염고래, 새끼와 함께 있는 귀신고래, 배 주름이 뚜렷한 혹등고래, 네모난 머리의 향고래 등 종별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경남 통영의 연대도 패총에서는 대형고래와 각종 돌고래 골격이 출토된 바 있다.


제주도 해녀들의 '돌고래 주의보'
2019년 7월 11일 제주시 이호동 해안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2019년 7월 11일 제주시 이호동 해안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고래는 보통 압도적 크기로 묘사된다. 흔히 쓰이는 속담 중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도 마찬가지. 대궐 같은 기와집을 두고 "고래등 같다"는 표현도 자주 쓴다. 고래와 달리 돌고래가 속담이나 속설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다. 다만 제주 해녀들 사이에선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 연안에는 연중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면서 해녀들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 해녀들은 돌고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면 머지않아 큰 바람이 분다고 믿으며, 돌고래 뒤에는 항상 상어가 따라다닌다고 믿는다. 제주도에는 '감새기 올 때 궂인 것 하나 조친다(돌고래 올 때 상어가 따라온다)', '웨감새기 노는 딘 가지 말라(외톨이 돌고래 노는 데는 상어가 나타나므로 가지 말라)'라는 속설이 있다. 상어는 곧바로 해녀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므로 돌고래가 나타나면 작업을 중지하고 경계한다고 한다.

맥 끊긴 전통 포경…잡힌 고래도 다시 바다에 버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활동가들이 2015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공사현장 앞에서 일본 남극포경 철회 촉구 및 경고 기자회견을 갖고 포경재개 규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뉴스1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활동가들이 2015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공사현장 앞에서 일본 남극포경 철회 촉구 및 경고 기자회견을 갖고 포경재개 규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뉴스1
신석기시대 이후 우리 민족의 포경 및 고래고기 식문화는 맥이 끊겼다. 우연히 좌초된 고래를 이용할 뿐 일본처럼 조직적으로 포경업에 나서진 않았던 것. 선사시대 이후 농업이 발달하면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게 돼 위험한 포경업이 점점 쇠퇴했다는 의견도 있다. 항해 기술과 어법이 발달했던 조선시대에도 포경은 이뤄지지 않았다.

19세기 초 서유구의 '임원십육지'는 포경을 하지 않는 이유로 '관의 수탈'을 들고 있다. 죽은 고래가 해안가에 좌초하면 관에서 민중을 동원해 이를 해체한 뒤 그 생산물을 수일에 걸쳐 말에 싣고 간다. 큰 고래 1마리를 획득하면 막대한 이득이 있으나 그것이 모두 관에 돌아가고 어민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므로 포경법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19세기 중엽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연안에 고래가 좌초하면 많은 고래기름을 얻을 수 있으나, 관에서 그 이익을 독점하는 반면 그것이 민폐가 되므로 많은 사람이 모여 죽은 고래를 바다에 밀어 넣어 다른 지방으로 넘어가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혼란의 시기 러시아·일본이 만든 근대식 포경기지
방어진해경파출소 경찰관이  2019년 6월 4일 오전 간절곶 동방 11Km해상에서 혼획된 밍크고래 외피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방어진해경파출소 경찰관이 2019년 6월 4일 오전 간절곶 동방 11Km해상에서 혼획된 밍크고래 외피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맥이 끊겼던 한반도의 포경은 1899년 러시아가 울산 장생포에 포경기지를 설치하면서 근대 포경으로 탈바꿈했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난 뒤 일본이 한반도 및 주변 해역의 이용·개발 권한을 독차지하면서 '동양포경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함북 청진항, 부산 장전장, 포항 구룡포, 울산 장생포, 경남 거제, 전남 신안 흑산도, 인천 어청도, 전북 군산 대청도 등에 수많은 포경기지를 만들면서 국내 고래잡이를 독점했다. 이는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반도 주변 고래를 남획하는 기반이 됐다.

이처럼 일제가 구축한 포경산업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다. 1985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 포경 모라토리엄을 이행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21척의 포경선이 있었으며, 연간 최대 1000마리 정도의 밍크고래를 잡았다. 이러한 포경선은 과거 주요 포경기지가 있던 장생포, 방어진, 구룡포 등 경산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정됐다. 고래고기 식문화도 이들 지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까지는 참고래가 꽤 잡혔으나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1970년대부터 밍크고래가 주 포획대상이 됐다. 다만 여전히 대중적인 기호식품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고래 살코기는 일본에 수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팔리는 고래고기는 모두 '혼획' 개체
제주 해역에서 무리지어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 /사진=국립수산과학원제주 해역에서 무리지어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요즘 우리 바다에서 주로 보이는 고래는 밍크고래, 상괭이, 참돌고래, 낫돌고래, 남방큰돌고래 등 5종이다. 국내에서는 1986년부터 포경이 금지된 이후 '혼획된 고래'에 한해서만 위판과 유통을 허가한다. 정확히는 '허가받은 어업을 통해 혼획된', '해양보호생물이 아닌' 고래 종만 위판을 허가하고 있다. 지금은 밍크고래를 제외한 모든 수염고래류와 향고래에 이어 남방큰돌고래, 상괭이, 범고래·흑범고래가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됐다. 최근 5년간 주로 유통되는 고래 종류는 밍크고래, 참돌고래, 낫돌고래 등이다. 혼획이란 어업에서 특정 종류의 어패류를 잡으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본래 목적이 아닌 종이 섞여 잡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가장 혼획이 많이 보고되는 종은 상괭이로 주로 서해와 남해 연안에 서식하며 대부분 서해 안강망(자루 형태의 그물)에서 혼획된다. 상괭이는 해양보호생물이기 때문에 혼획된 개체라도 위판이 불가능하다. 밍크고래는 겨울철과 봄철에 혼획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 시기의 한반도주변이 밍크고래의 회유 이동 경로로 여겨진다. 밍크고래의 혼획은 정치망(깔때기형 그물), 통발 등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 동해 연안에 연중 분포하는 참돌고래는 자망(가로로 긴 걸그물), 정치망에서 주로 혼획되며 낫돌고래는 겨울철에 주로 자망에 혼획된다.

문제는 '혼획'으로 신고되는 고래 고기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 해마다 1000~2000마리가 혼획된 개체로 보고된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에는 2161마리에 대한 혼획 신고가 들어왔다. 해경이 현장에 출동해 혼획 여부를 판단한다지만, 혼획으로 위장할 가능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는 항상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고래, 식량자원보다 더 큰 역할 '생태계의 우산'
지난해 6월 3일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입구에 고래류의 해양보호생물종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사진=뉴스1지난해 6월 3일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입구에 고래류의 해양보호생물종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사진=뉴스1
이제 고래는 식량자원으로서의 수산생물은 아니다. 다만 해양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고래를 보호하면 하부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 또한 보호할 수 있어 생태계의 우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종을 '우산종'이라 한다. 거대한 크기의 고래 개체수가 늘어나고 죽은 고래가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사체에 저장된 탄소는 대기 중으로 재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몇백년간 심해에 남아 해양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다. 즉 고래가 많아지면 대기 중 탄소가 먹이사슬을 따라 고래라는 유기체 형태로 수중에 공급되는 것이다. 이는 육상 생태계를 보호하고 삼림훼손을 막아 탄소 배출을 막는 것과 비슷하다.

김현우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사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연안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상괭이가 특히 큰 혼획 피해를 입고 있는데 매년 수백마리가 안강망에 걸려 죽는다"며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강망에 상괭이가 탈출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지난해부터 보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해 정치망과 통발에도 참돌고래와 밍크고래가 걸려 죽는데 어구별로 현황 파악 및 혼획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라며 "어업과 고래의 공존을 통해 우리 자손들도 고래를 계속 볼 수 있는 건강한 해양생태계가 되도록 고래의 혼획 저감을 위한 국립수산과학원의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고래 대신 먹을 맛있는 생선이 한가득 '대한민국 수산대전'
/사진=해양수산부/사진=해양수산부
이제는 고래 대신 먹을 수 있는 수산생물이 넘쳐나는 시대다. 신선하고 맛있는 수산물을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년 내내 '대한민국 수산대전'이 열린다. 해양수산부가 여는 이 행사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과 어민들을 위한 수산물 할인행사다. 대한민국 수산대전 홈페이지(www.fsale.kr)에서 현재 진행중인 할인행사와 이벤트, 제철 수산물 정보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수산대전에는 전통시장부터 오프라인 마트, 온라인 쇼핑몰, 생활협동조합, 수산유통 스타트업 등 수산물 주요 판매처가 대부분 참여한다.

오프라인 업체로는 △이마트 △홈플러스 △메가마트 △GS리테일 △수협유통 △롯데마트 △농협하나로마트 △초록마을 △이마트 트레이더스 △서원유통 △두레생협 △한살림생협 등 12개사가 참여한다. 온라인에서는 △수협쇼핑 △마켓컬리 △우체국쇼핑 △쿠팡 △11번가 △SSG.com △우아한형제들 △얌테이블 △더파이러츠 △오아시스 △위메프 △인터파크 △농협몰 △롯데쇼핑 △G마켓 △티몬 △숨비해물 △CJ ENM △GS홈쇼핑 △비비수 △현대이지웰 등 21개사에서 사시사철 할인 쿠폰을 뿌린다.

행사기간에 맞춰 생선을 주문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20% 할인에 참여업체 자체 할인을 더해 반값에도 구입할 수 있다. 제로페이앱을 쓰면 전통시장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 수산물 상품권을 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추억 속에 머물러있는 고래고기. 이를 즐기는 식습관은 결국 생태계를 망쳐 우리 후손들이 영영 고래 구경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악습이 될 수 있다. 이제 고래보다 더 풍부하고 맛있는 다른 먹거리들로 그 자리를 채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감수: 김현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해양수산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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