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바이오산업을 보는 시각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후보 물질 발굴부터 개발, 수차례의 임상 등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성공했을 경우 소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 바이오 기업에 돈이 몰리는 등 거품과 고평가 논란도 지속된다.
그럼에도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문제 해결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지금 바이오산업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만큼은 이견이 없다.
정 대표는 바이오벤처캐피털리스트 1세대로 한국 최초의 바이오텍 펀드를 결성했다. 그는 제넥신, 메디톡스, 크리스탈지노믹스, 바이오니아, 아미코젠, 세원셀론텍, 바이오톡스텍, 안트로젠, 제노포커스, HLB제약, 바디텍메드 등 약 30개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바이오산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투자자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미국 바이오 시장은 어떠했나?
▶바이오 종목 주식은 2020년부터 2021년 2월 초까지 다른 업종의 수익률을 압도하는 성장세를 지속했다. 하지만 그 후 수직 하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폭락했다. 유의해서 볼 부분은 기업 가치 200억 달러 이하의 바이오텍들은 2021년 고점 대비 약 50%가 하락했는데, 200억 달러 이상인 초우량 바이오텍들은 2021년 한 해 11%가 상승했다. 이는 한국의 서학개미(미국 등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바이오산업의 화두와 전망은 어떠한가?
▶2020년 mRNA로 대표되는 기술 분야 이노베이션 열풍은 올해도 신약 타깃, 약품 생산, 약물 전달 분야에서 계속되며 바이오 회사들의 가치 상승을 견인할 것이다. 다만 많은 회사들이 실패를 겪는 등 이러한 성장통이 전체 시장에서 수익률을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 낫적혈구병, 희귀림프종 등 희귀병 분야나, 비슷한 유망 타깃에 너무 많은 회사들이 몰리는 것도 수익률을 낮출 것이다.
M&A(인수합병)의 경우 자금력이 풍부한 빅파마들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바이오텍 인수가 활성화되면서 전체 시장을 이끌 것으로 생각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 FDA의 새로운 사령탑인 자넷 우드콕 박사가 과거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혁신적인 시도에 관대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판단돼, 많은 혁신 신약들이 허가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예를 들어 10년 전 FDA 항암신약 허가 담당자의 부인이 암으로 사망 후 그다음 해에 많은 항암제가 신약 허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에 누가 의사결정을 하냐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시장 전망은 주요 투자자의 70%가 주식시장이 상승할 것으로 본다. 항암제와 면역치료제 분야가 유망할 것으로 판단되며, 유전자치료제가 계속 시장을 주도해 요즘 각광을 받는 RNAi나 항체약물복합체(Antibody-drug conjugates)가 동참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바이오텍의 고평가 논란은 어떻게 보나?
▶7년 전 당시 조 단위 가치의 바이오텍이 미국에서 투자·M&A를 할 때 한국보다 3배가 저렴하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한국 바이오산업도 최근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미국 바이오텍과 차이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과대평가되는 회사가 없지 않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바이오텍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국 회사들은 일단 기술력에 대한 검증을 위해 다른 것은 제쳐두고 '라이선스 아웃'(기술이나 지적 재산권이 들어간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타사에 허가해 주는 것)에 주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상장은 비상장대로 코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상장사는 또한 부풀려진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라이선스 아웃에 집중한다.
물론 라이선스 아웃이 의미가 있고, 리스크를 분담하는 요건이 되지만 이제는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릴 때다. 길리어드의 예를 들면 1992년 2억 5000만 달러의 가치로 상장 후에 세일즈와 임상 능력이 부족해 타미플루를 로슈에 기술 수출하는 등 현재 R&D에 집중하는 한국 바이오텍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02년 흑자전환 후 걸어온 길을 분석해 보면 첫 HIV 치료제인 비리어스를 출시하며 캐시카우를 확보하고 HIV 치료제 블록버스터를 성공시키며 임상능력까지 키워 2008년 500억 달러 가치로 올라섰다. 이후 파마셋을 인수하는 등 M&A와 마케팅 능력까지 갖춰 1000억 달러 시가총액 시대를 연다. 이는 한국제약사나 바이오텍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진 연구에 집중하며 기술수출에 몰두했지만 이것은 반대로 보면 씨앗을 헐값에 넘기는 것과 다름없다. 내부 역량을 더 키워서 열매로 성장시킨다면 몇백 배 몇천 배 수익도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바이오 업계에 조언을 한다면?
▶미국에서 한국 바이오업계의 일련의 임상 관련 부정적 사태를 보면서 느낀 점은 컴플라이언스 및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국 상장사를 경영하면서 상장 후 주가 폭등과 대규모 임상 실패 시 주가 하락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무엇보다 내부적인 리스크 메니지먼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자자들도 트렌드나 기술적 매력도에 매몰돼 이러한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이오 특히 신약 분야는 투자 시 임상 관련 이벤트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크므로, 신약개발 계획과 총체적인 리스크 관리, 컴플라이언스 준수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