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 우주에 떠있는 듯한 두 반가사유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
단순 국보급 유물을 전시한 공간이 아니다. 일단 같은 듯 다른 두 명작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세련되고 화려한 6세기 반가사유상(백제 추정), 단아하고 유려한 7세기 반가사유상(신라 추정). 유리장이 없어서 두 반가사유상의 질감을 100% 느낄 수 있다. 360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어서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자태를 감상하는 게 가능하다.
'사유의 방'을 추진한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 18일 '찐터뷰'와 만나 "1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시간이 좀 멈춰있는 그런 공간이길 바란다"며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자유"라고 말했다.
또 "반가사유상은 반드시 뒷면까지 봐야 한다. 반가사유상을 감상할 때 1도씩 돌아보면 얼굴 표정이 다 바뀐다"며 " 돌면서 바뀌는 표정, 자세, 선을 감상하면 계속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관객들도 당연히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관객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감상하고, 사유하고 있었다. 다양한 환경의 다양한 사람들이 반가사유상 두 점을 탑돌이 하듯 돌아보며 깊은 생각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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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공통점이 찾자면, 관객들이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을 감상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점, 또 온전히 '나'와 '현재'에 대한 사유를 하고 있었던 점이다. 그 사유는 반드시 철학적이지도 않았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생각에 가까웠다.
지난 21일자 '찐터뷰'를 통해 보도된 일부 관객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손잡고 '사유의 방'을 찾은 부자…10세 소년 "나는 누구인가"- 아드님께 먼저 질문을 드린다. 전시를 본 느낌이 어떠했나.
▷이모군(10세)="되게 가치가 있는 거 같다. 반가사유상의 생각이 되게 깊어보였다."
▷이인희씨(이군의 아버지, 45세)="내가 '부처님이 오늘 저녁 뭘 먹으시나 생각하는 걸까'라고 했더니 아이가 '나는 누구일까. 나는 여기 왜 있을까' 이런 생각하는 거 같다고 하더라."
- 아드님 생각이 깊으시다.
▷이모군="여기 온 게 되게 뿌듯했다."
- 아버님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
▷이인희씨="신비롭더라. 복잡한 사회에서의 생각들. 전시장이 내 머릿속 같기도 했다."
- 반가사유상이 삶에 영감을 줬나.
▷이인희씨="들어갔을 때는 고요한 느낌이었다. 넓은 곳에 반가사유상 두 개만 있으니까 외로운 느낌도 들더라. 세월도 느껴지고, 멋있고 신비로웠다."
- 어떻게 부자간에 보러오시게 됐나.
▷이인희씨="매스컴에 '사유의 방'이 나온 것을 보고 아이랑 온 거다. 아들이 오늘 방학을 했다. '사유의 방'은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 아이는 세계관을 보고 싶어했다."
- '사유의 방'에서 한 사유는 어떤 것인가.
▷이인희씨="생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 흘려보내자"는 사유도…소녀는 "수능에 통과했나?' ▷정경환씨(남, 62세)="문화적 자부심을 느꼈다. 다른 나라 정상급 인사가 와도 보여줄만한 전시다.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모나리자를 능가하는 것 같다. 500여년 전 저렇게 정교하게 조각을 한 그 생각의 깊이, 만든 사람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현대 기술과 견줘도 더 뛰어나다고 보인다. 전시장 시설물도 신경쓴 게 느껴진다. 다시 인생을 되돌아 보고 인생을 다시 더 깊게 되새겼다.
▷이성형씨(남, 62세)="문화가 선진국의 척도다. 공업, 산업의 발전이 선진국의 척도가 아니다. 저 정도의 아름다움을 전 국민이 공유했을 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재조명하는 게 필요하다. 1500년 전 조각이 어떻게 지금까지 그 형태와 미소가 저렇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그 시대 문화와 기술이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실감했다."
▷정다혜씨(여, 36세)="모든 공간 자체가 밖과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 각자 감상하는 모습도 자세하게 보게 됐다. 모두 반가사유상을 한 바퀴씩 돌면서 감상하더라. 불상을 빙글빙글 돌며 각자가 소통하는 게 인상깊었다. 신년이 되니 생각도 복잡하고, 코로나19가 지속돼 갑갑한 상황인데, 다 흘려보내자고 생각했다. 두 불상의 미소도 톤이 다르다. 왼쪽(국보 78호)은 화려해서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오른쪽(국보 83호, 이상 옛 지정번호 기준)은 보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볼 수 있었다."
반가사유상의 알듯 말듯한 미소. 사진 오른쪽이 국보 83호, 왼쪽이 78호./사진=최경민 기자
▷최모양(11세)="좀 무섭기도 했는데 신비했다. 반가사유상이 고민하는 모습, 뒷모습이 재미있었다.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거 같았다. 이런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반가사유상이 뭔가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수능에 통과한 거 같았다."
반가사유상의 '등'에 담긴 의미…"해탈한 초월자의 등"▷이상인(구글 유튜브 UX 디자이너)="로댕의 대표작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고심에 빠져있다. 그의 등은 근육이 잔뜩 긴장된 채 심하게 웅크리고 있다. 현세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듯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 반가사유상을 보았다. 앉아서 생각을 한다는 키워드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공유하지만, 이렇게 다른 접근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온화한 미소와 함께 날갯죽지를 늘어뜨린 두 반가사유상의 등은 평안함의 극치였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탈한 초월자의 등이었다. 머리가 하얘져서 부처의 열반한 등을 30분가량 더 넋을 놓고 보고 나왔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많은 도전과 장벽에 부딪힌다. 많은 경우 내가 해결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현실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벗어나기 어려울지라도 마음만큼은 반가사유상의 초월과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우리 존재 모두 화이팅."
※이상인 디자이너가 지난달 29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이 디자이너의 허락을 받고 글 내용을 기사에 활용했습니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탈한 초월자의 등"/사진=최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