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초등생도 "나는 누구일까, 여기 왜 있을까" 말하는 전시회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01.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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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3-②'사유의 방'을 감상한 사람들, 새로운 스탠더드?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탈한 초월자의 등"/사진=최경민 기자"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탈한 초월자의 등"/사진=최경민 기자


"나는 누구일까. 나는 여기 왜 있을까."

지난 18일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앞에서 만난 이모군(10세)은 이곳에 있는 두 점(옛 지정번호 기준 78호·83호)의 반가사유상을 보고 말했다. 이군의 아버지인 이인희씨(45세)가 "부처님이 오늘 저녁 뭘 먹으실까 생각하나?"라고 장난스럽게 묻자 나온 답이었다. 이군은 반가사유상을 두고 "되게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냥 생각이 되게 깊어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10세 초등학생도 어른스러운 '사유'를 하게 되는 장소가 '사유의 방'이다. 이씨는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내가 보고 싶어서 아들을 데리고 왔다. 복잡한 사회에서의 생각들을 했다. 생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멋있고 신비로웠다"고 설명했다.



관람객들은 온전히 '나'와 '현재'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현대인에게 절실한 시간. 하지만 갖기 힘든 시간. 그 시간을 우주를 본떠 만든 전시장 안에서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반가사유상 앞에서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탑돌이를 하듯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돌며 감상한다. 앞모습 뿐만 아니라 뒷모습에서도 큰 감동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낸 이상인 디자이너는 반가사유상을 두고 "온화한 미소와 함께 날갯죽지를 늘어뜨린 등은 평안함의 극치였다"고 평했다. 등의 근육이 잔뜩 긴장돼 현세의 무게가 짓누르는 듯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하며 "반가사유상은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탈한 초월자의 등이었다. 머리가 하얘져서 부처의 열반한 등을 30분가량 더 넋을 놓고 보고 나왔었다"고 설명했다.



이 디자이너는 "우리는 살다 보면 많은 도전과 장벽에 부딪힌다. 많은 경우 내가 해결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며 "그래서 현실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벗어나기 어려울지라도 마음만큼은 반가사유상의 초월과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우리 존재 모두 화이팅"이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면서 사유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효과도 있었다. 정다혜씨(여, 36세)는 "두 불상의 미소도 톤이 다르다. 왼쪽(국보 78호)은 화려해서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오른쪽(국보 83호, 이상 옛 지정번호 기준)은 보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볼 수 있었다"며 "신년이 되니 생각도 복잡하고 코로나19가 지속돼 갑갑한 상황인데, 다 흘려보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가사유상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런 문화 콘텐츠를 만든 것에 국가적 자부심을 느낀다"는 사람도, "넓은 곳에 반가사유상 두 개만 있으니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반가사유상 앞에서 각자의 생각을 했던 것이다.


대학생 김유진씨(여, 23세)는 "전공이 제품 디자인 쪽인데, 반가사유상 외관의 디테일을 자세히 보게 됐다. '와 저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마감은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고 언급했다. 반면 초등학생 최모양(11세)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두고 "수능에 통과한 거 같았다.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며 웃었다.
우주 속에 떠있는 듯한 반가사유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우주 속에 떠있는 듯한 반가사유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
'사유의 방'은 이같이 다양한 환경의 다양한 사람들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보며 깊은 생각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반복할 수 있게 설계된 곳이었다. 반가사유상에 유리 진열장을 씌우지 않고 360도로 볼 수 있도록 했고, 천장에 2만여개의 금속봉을 박아 별이 쏟아지는 우주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입구의 어둠과 계피향은 속세와의 차별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서 바닥과 벽에 미세한 경사를 줘서 관객의 포커스가 반가사유상에 맞춰지도록 했다.

어떤 질문이든 들어줄 것 같은 반가사유상 두 점은 빙긋 웃는 얼굴로 답을 줄 뿐이다. 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 18일 '찐터뷰'와 만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철학적 사고를 해도 되고, 아무 생각없이 멍 때려도 된다. 1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시간이 좀 멈춰있는 그런 공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이구동성 "이런 전시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어쩌면 관객들의 이같은 바람이 곧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민 관장은 백제금동대향로와 같은 유물에도 '사유의 방'과 같은 콘셉트가 먹힐 것 같다는 '찐터뷰'의 질문에 "국립부여박물관이 '국보관'을 새로 건립하게 되는데(2025년 완공), '사유의 방'을 많이 참조하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민 관장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도 이런 콘셉트가 적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야외에 걸려있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유물 주변에 전체 유리벽으로 된 건물을 지어 연출을 하면 지금 주는 감동의 100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민 관장의 생각이다.

타종 검사를 수년 동안 한 다음, 이상이 없으면 봄이나 가을 마다 타종 행사를 하는 것 역시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장도 역임했던 적이 있는 민 관장은 성덕대왕신종의 소리에 대해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고 표현했다.

민 관장은 "우리가 보유한 뛰어난 유물의 본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게 앞으로 박물관이 해나가야 하는 전시 콘셉트다. 그런 일들을 찾아서 해나가야 한다"며 "앞으로 박물관도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재를 보여주고, 나아가 미래까지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전시를 해야한다"고 밝혔다.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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