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한 고시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 오진영 기자
서울시는 지난 4일 최소 7㎡(2.12평) 이상, 건물 밖 창문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례 개정안을 발표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서울 시내에는 창문이 없고 좁아 '제 2의 국일고시원'이 될 우려가 큰 방이 많다. 서울시의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고시원 방의 53%가 7㎡미만의 비좁은 방이었다. 대피 가능한 창문이 설치된 곳도 절반에 못 미치는 47.6%에 불과했으며,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에서도 고시원 거주 2102가구 중 32.8%가 '비좁음' 때문에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고시원 업주도 면적이나 창문 관련 규정이 시행되면 당장 월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운영 중인 고시원을 개축할 필요는 없지만, 고시원 특성상 잦은 증축·신축이 불가피해 부득이하게 비용이 거주자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창문이 있는 방은 월세가 5만~10만원 비싸다. 또 면적이 1평 늘어나면 5만~7만원 정도 추가비용을 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지하 쪽방촌. 지하에 있어 창문이 없고 비좁지만 고시원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가격이 오르면 쪽방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사진= 오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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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건물이 아닌 타인의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는 영세 업주가 많다는 점도 부담이다. 황규석 한국고시원협회 회장은 "서울시 소재 고시원 중 80%가 임차 고시원으로 업주 의사대로 개축하거나 큰 창문을 내기가 어렵다"라며 "총면적은 한정돼 있고 설치해야 하는 방의 개수는 줄어들면 업주·거주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거주자들의 복지를 위해 제정한 조례가 거꾸로 거주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로구의 고시원에서 5년째 거주해 온 B씨(66)는 "코로나19 이후 무료급식 봉사도 뜸해지고 도시락 지원도 줄어 식비도 올랐다"라며 "월세는커녕 밥 먹기도 빠듯한데 여기서 매달 5만~10만원씩 더 내야 하면 쪽방 같은 곳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는 안전과 거주 안정을 모두 잡기 위해 거주자 지원 제도를 적극 시행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서울시에서도 주택바우처(주택임대료 지원) 금액을 5만원에서 8만원으로 상향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주거급여 지원을 시행 중"이라며 "여러 대응방안을 통해 (개정 조례를)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