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 퍼준다면서...'나랏빚 한도' 얘긴 1년간 딱 2시간 했다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2022.01.03 18:00
글자크기

[MT리포트] 국회에서 잠든 재정준칙①

편집자주 정부는 2020년말 나랏빚과 재정적자에 제한을 두는 '한국판 재정준칙' 수립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코로나19(COVID-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국가채무를 관리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도지만 재정준칙은 1년이 넘도록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과연 현 정부 임기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스1


정부가 나랏빚과 재정적자의 급증을 막겠다며 내놓은 '한국판 재정준칙'이 1년 넘게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올해 '예산 600조원-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에 들어서고 저출산·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효율적인 재정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19(COVID-19) 유행 장기화와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돈풀기' 경쟁을 하면서 나라곳간의 자물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3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정부가 2020년 12월 제출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소관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아직까지 계류돼 있다.



개정안은 2025년부터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도록 규정했다. 단 통합재정수지나 국가채무가 기준을 넘어서더라도 다른 한쪽이 기준 이하로 유지되면 재정준칙을 준수한 것으로 산식이 짜여졌다.

100조원 퍼준다면서...'나랏빚 한도' 얘긴 1년간 딱 2시간 했다
정부가 재정준칙 마련에 나선 것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1월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한 이후 4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등 재정투입이 늘어나며 재정건전성에 경고등이 커졌다. 문재인 정부 이후 복지예산 확대와 경기 대응 등에 대규모 재정이 투입된 것도 재정준칙 도입 필요성을 키웠다. 현 정부 첫해인 2017년 36%였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0년 39.8%로 뛰었고, 지난해 2차 추경 기준으론 47.3%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국회의 논의는 지난 1년 동안 단 1차례, 2시간여에 불과했다. 2020년 12월30일 국회에 제출된 관련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지난해 2월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전문위원 검토보고와 함께 상정됐지만 당시 1차 추경 논의에 밀려 안건 보고에 그쳤다.

재정준칙이 국회 테이블에 다시 올라온 것은 9개월여 뒤인 11월23일 정기국회에서다. 2022년 예산안과 각종 법률 개정안을 다루는 정기국회에서 기재위는 이날 경제재정소위를 열어 안건 중 하나로 재정준칙을 다뤘다. 1년 동안 9차례 경제재정소위가 진행됐지만 이 가운데 재정준칙에 대해 논의한 건 단 한 차례 뿐이었다.

지난해 11월 소위 논의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국민의힘 류성걸·송언석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재정건전화법' 제정안 내용과 정부의 재정준칙이 성격이 겹친 탓이다. 류성걸·송언석 의원안은 재정준칙을 도입하되 지방정부와 공공기관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국가채무비율 상한을 GDP 대비 45%, 재정적자 상한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성 기금 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 기준 2~3%로 잡은 것이 특징이다.


기존 국가재정법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 법을 제정하는 만큼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정부안과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기재부 측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보장과 새 법안 제정까지 절차, 현재 국가 재정을 고려한 국가채무·수지 비율 기준 등을 고려해 기존 국가재정법을 개정한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재정준칙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재정준칙에 반대의견을 표시하고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37개국 중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낮은 3위"라며 "왜 지금 이것을 들고 나와서 시끄럽게 구냐"고 비난했다. 이밖에 재정준칙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 부재와 통합재정수지, 국가채무 비율 가운데 하나가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다른 기준이 충족되면 준칙을 준수한 것으로 보는 상호보완 구조 산식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올해 5월까지인 문재인 정부의 임기를 고려하면 재정준칙 도입은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3월9일 대선 전까지 임시국회가 열리더라도 재정준칙 논의가 급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각각 50조원, 100조원 규모의 공약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차기 정부의 재정정책에 족쇄가 될 재정준칙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기재위 소위원회 논의 이후 각 의원들을 찾아 재정준칙 필요성과 산식 구조 등을 설명하고 있다"며 "본회의 통과는 사실상 무리지만 현 정부 임기 중에 상임위라도 통과하면 차기 정부에서 준칙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