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이 GDP보다 더 많아도 OK"?

머니투데이 세종=유재희 기자 2022.01.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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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국회서 잠든 재정준칙③

편집자주 정부는 2020년말 나랏빚과 재정적자에 제한을 두는 '한국판 재정준칙' 수립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코로나19(COVID-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국가채무를 관리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도지만 재정준칙은 1년이 넘도록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과연 현 정부 임기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추진 브리핑을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의 역할 수행 등으로 국가채무와 재정수지 적자가 크게 증가됨에 따라 실효성 있는 재정 관리를 위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0.10.5/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추진 브리핑을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의 역할 수행 등으로 국가채무와 재정수지 적자가 크게 증가됨에 따라 실효성 있는 재정 관리를 위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0.10.5/뉴스1


나라살림의 과도한 씀씀이를 막는 마지노선이 재정준칙이지만,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을 놓고 '맹탕' 혹은 '고무줄'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GDP(국내총생산)를 늘려잡을 경우 국가채무·통합재정수지 비율이 크게 낮아져 재정준칙의 구속력이 느슨해진다는 점에서다. 또 재정준칙 산식상 국가채무 비율 60%와 통합재정수지 -3% 가운데 어느 한쪽을 총족하지 못해도 다른 하나가 메워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도 지적된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국형 재정준칙' 산식은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0'이다. 정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한도를 60%,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이 -3%로 잡고, 초과 비율을 곱한 값이 1 이하일 경우 재정준칙을 준수하는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재정준칙 적용시점은 2025년부터다.



정부가 지난해 9월 2022년 예산안과 함께 제출한 '2021~2025년 중기재정전망'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국가채무비율은 58.8%,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3%다. 이 수치를 재정준칙 산식에 넣어보면 기준값인 1보다 작은 0.98로, 준칙을 준수한다는 것으로 나온다.

2025년 국가채무 전망치는 1408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국가채무 965조3000억원보다 400조원 넘게 증가함에도 재정준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GDP 성장률 전망치를 큰 폭으로 늘려잡았기 때문이다. 국가채무 비율과 통합재정수지 비율 계산시 분모가 되는 명목 GDP를 늘려잡으면서 국가채무 비율이 단 11.5%(p)만 오른 것이다. 여기에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지난해 90조3000억원에서 2025년 72조6000억원으로 크게 줄어들면서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비율이 -4.4%에서 -3%로 개선되는 영향도 있다.



GDP가 재정준칙의 영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2030년 중기재정전망'에서는 2025년 국가채무 비율 61%, 통합재정수지 비율 -3.4%를 재정준칙 산식에 넣을 경우 기준치 1을 넘어서는 1.15가 나온다. 정부의 중기재정전망에선 분모인 2025년 GDP를 2396조원으로 잡은데 반해 예정처는 2362조원으로 30조원 가량 적게 잡은 결과다.

사진 제공=기획재정부사진 제공=기획재정부
재정준칙이 국가채무비율이나 통합재정수지비율 등 지표 하나만 충족할 경우 빚을 크게 늘릴 수 있도록 돼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가령 국가채무 비율이 100%까지 올라도, 통합재정수지 비율이 -1.8%이라면 재정준칙 산식값이 0.99가 나와 준칙을 지킨 게 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달러·엔화·유로화 등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멕시코 등 14개국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2019년 기준 42% 수준이다. 비기축통화국인 우리 경제가 국가신용도와 향후 성장동력 등을 감안해 감당할 수 있는 국가채무비율을 60%로 설정하고도, 당해년도 재정적자 비율에 따라 채무비율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 교수는 '재정준칙 해외사례 비교 및 국내 도입 방안 보고서'에서 "독일·스웨덴과 비교하면 정부 재정준칙은 재정적자 허용 폭이 크고, 국가채무 비율은 산식에 따라 이론적으로 GDP 대비 100%도 허용하도록 설계돼 채무한도도 더 큰 셈"이라며 "△의무지출에 대한 페이고 원칙(각 부처가 정책을 만들 때 세입 증가나 법정지출 감소 등 재원 방안도 마련하도록 의무화) △총지출 제한 △국가채무비율 제한 등 재정준칙을 결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표 제공=기획재정부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 표 제공=기획재정부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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