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된 여아를 학대,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부 A(26)씨가 지난 7월 14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뉴스1
20개월 아기 성폭행하고 살해했는데 화학적 거세는 기각…"정신병 없어"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유석철)는 지난 22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살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과 사체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또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200시간과 아동 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20년도 함께 명령했다.
화학적 거세는 성도착증 환자로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19세 이상 성범죄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제도다. 약물은 성 충동의 근원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약물 투입을 중단하면 다시 성욕이 회복된다. 이 제도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최장 15년까지 시행할 수 있다.
'1년에 7명꼴' 화학적 거세 화학적 거세는 재범을 막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정부는 2010년 7월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화학적 거세를 명령하는 첫 판결은 2013년 1월부터 나왔고,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화학적 거세에 대한 합헌 결정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집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A씨의 사례처럼 재판부가 화학적 거세의 시행을 지나치게 기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4일 기준으로 화학적 거세 판·결정을 받은 사례는 총 70건이었다. 실제로 집행 중이거나 집행 종료된 사례가 49건이었고, 21건은 집행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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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도 법원은 13세 미만 아동에게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70대 남성에 대한 화학적 거세 청구를 기각했다. 이 남성은 13세 미만 아동 5명에게 유사성행위를 시키거나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9세 아동의 집에 침입하기도 했으며, 7세 아동을 유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성도착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될 가능성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도 재범 방지가 가능하다"고 봤다.
화학적 거세는 재범률을 낮추는 데에 효과적이다. 2019년 법무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 대상 성범죄자의 보호관찰기간 재범률이 0%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연구는 심리치료·보호관찰 등을 함께한 결과라고 전제한 후 "화학적 거세를 받은 성범죄자 25명이 평균 22.3개월 동안 동종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한편으로 형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동 성범죄자가 성 도착증을 가지고 범행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찰과 치료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출소자의 재범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전자발찌 혹은 성 충동 약물치료라는 양극단의 해결책 밖에 없다"며 "형량을 높여도 무기징역이 아니면 언젠가 (범죄자가) 출소하기 때문에 재범 위험성을 낮출 수 있고 사회 안전을 추구하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치료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