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죽이는 식자재마트"…깊어지는 골목 갈등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21.1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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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규제가 낳은 新포식자 식자재마트② 전통시장-식자재마트, 전국 곳곳 갈등 고조

편집자주 의무휴업, 입점제한 등 유통규제가 대형마트에 족쇄를 채운 사이 식자재마트가 새로운 포식자로 성장했다.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를 만들었지만, 정작 영세 슈퍼마켓은 크게 줄어든 반면 식자재마트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급성장, 대형마트를 위협할 정도다. 지난 10년간의 규제로 기형적으로 왜곡된 마트 지형을 살펴본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 식자재마트가 고객들로 분주하다. /사진=이재은 기자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 식자재마트가 고객들로 분주하다. /사진=이재은 기자


#2018년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해 있던 홈플러스 동김해점이 폐점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월 2회 휴무'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등의 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삼방시장 상인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자리에 대형 식자재마트인 '일등마트'가 입점하면서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시장 상인회가 "대형마트보다 식자재마트 입점시 전통시장의 피해가 더 크다"며 곳곳에 식자재마트 입점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끝내 식자재마트는 문을 열었다.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위협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실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식자재마트는 본래 식당이나 소매점에 식자재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식자재에 국한하지 않고 전통시장과 일반 마트 판매 품목까지 두루 취급하는데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일반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식자재마트에 손님을 빼앗긴 소형 슈퍼마켓과 전통시장 상인들은 상권 보호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전국 곳곳에서 식자재마트와 전통시장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2012년부터 대형마트 규제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전통시장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식자재마트가 지목되면서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유통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식자재마트는 취급품목이나 고객이용패턴 등이 전통시장과 겹쳤다. 유통산업연합회가 분석한 '식자재마트가 주변상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도 식자재마트 출범 1년 후 100m 이내 전통시장 매출액이 6.97% 감소했다.
"전통시장 죽이는 식자재마트"…깊어지는 골목 갈등
상황이 이렇다보니 식자재마트와 골목시장간의 갈등은 첨예하다. 2018년 10월 인천 계산전통시장 상인회는 계양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일대에 식자재마트 건축 허가를 내어주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구청은 식자재마트 허가를 두 번이나 반려했지만, 행정심판 끝에 '우성식자재마트 계산점'이 문을 열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과 근처의 엔씨식자재마트, 시흥시 삼미시장과 근처의 세계로마트, 서울시 중랑구 우림시장과 근처의 우림식자재마트, 제천시 중앙·내토·동문시장과 근처의 씨케이식자재마트 등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 김해점이 폐점하고 그 자리에 일등마트가 들어섰듯,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하고 엘마트가 입점하는 등 기존 대형마트의 자리를 식자재마트가 대신하는 사례까지 늘며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식자재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한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에 대한 의무휴업 등의 규제를 받지 않아 대형마트보다 피해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지난 3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사진=뉴스1, 소상공인연합회 제공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지난 3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사진=뉴스1,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이에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식자재마트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인수 더불어민주당 전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식자재마트 영업규제를 촉구하며 지난 3월 삼보일배 시위를 진행했다. 그는 "식자재마트에 채소·과일·식품만 판매하는 줄 알았더니 실제론 공산품·생활용품 등 없는 물건이 없었다"며 "대형마트와 다를 게 없다면 대형마트에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등 12인은 대형마트·SSM(기업형슈퍼마켓)에 적용되는 출점규제와 영업규제를 식자재마트로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발의했다. 최 의원은 "대형마트를 규제했더니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포식자로 군림했다"면서 "이번 개정안은 중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 등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법적 보호장치"라고 설명했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소관위 심사 중이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식자재마트 입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대구시 의회는 2015년 '서민경제 특별진흥지구 지정·운영 조례'로 전통시장 1㎞ 내에 식자재마트 진입을 제한했다. 조례엔 영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자가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부산시 의회도 지난해 9월 '골목상권보호지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는 사업자가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또 개설지역과 시기를 예고하도록 하고 지역업체가 생산한 상품의 납품 확대, 지역 주민 고용촉진 등을 제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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