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사표' 대기업 김과장, '어디로' 물으니…"판교 갑니다"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21.12.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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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판교발 인사 혁신, 골리앗이 움직인다-③

편집자주 승진 연한 축소, 절대 평가 강화, 과감한 발탁과 보상...연공서열과 안정성으로 대변되던 제조업, 금융 등 기존 대기업들의 인사와 평가, 보상 관행이 바뀌고 있다. 공정과 수평적 조직 문화를 중시하는 MZ세대에 맞춘 변화지만 빅테크기업, 플랫폼기업, 스타트업 등 젊은 기업들로 빠져나가는 인재들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재계에 불어닥친 인사, 보상 시스템의 변화와 그 의미를 짚어본다.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과거 경쟁사 또는 해외 기업의 '인재 빼가기'를 경계해왔던 대기업들이 최근에는 스타트업까지 신경 써야 할 상황에 놓였다. 모바일 세상에서 생겨난 스타트업들에 수많은 청년 인재들이 열광하면서, MZ세대 중심의 능력있는 대기업 직원들도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판교로 달려가고 있어서다.

특히 스타트업의 여러 성공 신화에 뒤따르는 '수십억대 성과급, 스톡옵션' 풍문은 대기업의 젊은 인재들을 자극하고 있다. 평생 직장 개념이 옅어진 만큼,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직장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이직 고려하는 대기업 직장인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공동으로 조사해 지난 10월 발표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0'에서는 국내 대기업 재직자(상시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 250명 조사)에게 스타트업 창업 또는 이직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응답자 3명 중 1명(34%)이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창업보다는 적지만,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고려하는 대기업 직원도 5명 중 1명(19.2%) 꼴이었다. 지난해 같은 조사의 응답(17.6%)보다 1.6%포인트 높아진 결과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불안한 경제상황이 그나마 대기업 직원들의 스타트업 창업·이직 의지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 대기업 직원들 중 스타트업 창업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무려 44.0%, 이직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26.0%에 달했다. '포스트 코로나'가 본격화되면 능력 있는 대기업 인재들의 '모험심'이 다시 고개를 들지 모를 일이다.

'깜짝 사표' 대기업 김과장, '어디로' 물으니…"판교 갑니다"
"집값 올라 월급 더 적어졌다"…'성과급 신화' 꿈꾸는 MZ
대기업 직원들이 주로 스타트업 창업 및 이직을 고려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보수'였다. 이번 조사에서 스타트업 이직을 고민하는 대기업 직원들은 '스톡옵션 등으로 인한 수익 기대감(33.3%)' '빠른 성장으로 인한 성취감(31.3%)', '자율적·수평적인 조직 문화(20.8%)' 등을 이유로 꼽았다. 또 실제로 이직한다면 가장 많이 고려할 요소로도 과반(58.8%)이 금전적 보상(연봉·스톡옵션·샤이닝 보너스 등)을 꼽았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MZ 세대의 가치가 스타트업의 '거액 성과급' 사례에 부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초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불거진 여러 대기업의 '성과급' 논란과도 겹치는 대목이다. 대기업 직원들이 창업을 고려하는 이유 역시 '많은 수익 창출', '불안정한 직장', '월급이 적어서' 등이 주로 꼽혔다. 응답자들은 설문에서 "연봉 차감과 인원 감축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집값상승으로 월급이 더 적어졌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기업 직원이라도 최상위권이 아니면 '돈을 많이 못 번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실제로 취업준비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삼현에엘'(삼성·현대차·SK·LG그룹) '롯동금'(롯데·동부(현 DB)·금호아시아나) 등 대기업집단을 순위별 그룹으로 나눈 은어가 떠도는데, 최상위권이 아니라면 대우와 복지가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10년 뒤 내 모습, 부장?…'가치' 찾아 떠난다
'깜짝 사표' 대기업 김과장, '어디로' 물으니…"판교 갑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대중적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대기업 직원들을 자극하는 요소다. 실제로 대기업 재직자들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이미지로는 '혁신적인·창의적인'(33.2%), 젊은·새로운(24.4%)'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과반이었다. 또 최근 이커머스·유통·부동산·콘텐츠·생활서비스 등 소비자 친화적 분야의 스타트업이 각광을 받는 것도 도전의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다.

아울러 대기업은 안정적인 사업 분야에서 비교적 장기간의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통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불안과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하는 추세다. '10년, 20년 뒤 내 모습이 부장·국장이라면?'은 상당수 MZ 직장인들의 불안한 상상이다.

금융회사에서 과장급으로 일하다 관련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A씨는 "직전에 다니던 회사도 디지털 전환 노력을 했지만,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에는 벽이 높더라. 그만큼 '안정'과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며 "지금 회사가 성공하지 못해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돈은 벌어놨고, 앞으로는 좀 더 흥미로운 일에 내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막연한 환상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기존의 직장에서 당연하던 조직 체계, 업무 분장 시스템은 전무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할 일이더라"고 토로했다. 또 대부분이 회사와 함께 성공을 꿈꾸지만, 보장되지 않는 성과의 불안이 다수다. 실제로 앞선 조사에서 벤처·스타트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이직할 경우 선호하는 회사'를 물은 결과, 국내 대기업(24.8%) 또는 '공공기관·정부·공기업(20.0%)'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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