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영남도 호남도 아닌 '가야'는 어떻게 살았을까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21.12.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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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과세계

경남 고령 대가야박물관. 지산동 고분군 아래 들어선 이곳엔 고령의 질좋은 흙과 제철기술이 빚어낸 토기들이 지금도 제 빛을 낸다.

"대가야 토기로 유명한 것이 굽다리접시다. 대가야박물관의 굽다리접시에는 닭뼈와 복숭아 등 (…) 대가야시대의 '먹방'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유물이다. 실제 삼국사기에는 1세기 신라의 파사 이사금 때, 3세기 내해왕 때 복숭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의 한 토막이다. 520년간 존재했지만 1500년간 잊힌 나라. 책 은 가야의 옛 영역인 영호남 여러 땅을 돌아본 기행문이자 고고학 전공자의 눈으로 본 가야사 입문서다.
1500년전, 영남도 호남도 아닌 '가야'는 어떻게 살았을까


저자는 2018년 이후 가야의 옛 땅인 김해, 고령, 성주는 물론 진안, 순천, 장수까지 돌아봤다. 3년에 걸쳐 쌓인 시간동안 그는 가야가 잊힌 시대, 그 옛 땅에 살고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서 1500년전 가야인의 숨결을 떠올리려 애를 쓴다.

박물관에서 만난 닭뼈와 복숭아 말고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빼곡하다. 가야 무덤서 보이는 '순장'은 유목민족의 인신공희(human sacrifice) 풍습이다. 원래 스키타이, 흉노 등 북방 유목민의 풍습이라고. 몽고족도 순장을 했단다.



한반도에선 신라 지증왕(재위 500~514)부터 순장은 금지됐다. 가야도 6세기에 이르면 순장묘가 자취를 감췄으니 그즈음 순장을 금지한 듯하다. 지증왕은 소를 이용해 밭을 갈기 시작한 왕이다. 대규모 저수지도 만들었다. 본격적인 농경 문화가 자리잡았다. 농사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말한다.

"한 사람의 노동력도 소중한 시기가 되면서 순장은 점차 유지하기 어려운 풍습이 됐다."

가야계 유민인 우륵, 김유신 등의 자취도 따라간다. 우륵의 삶을 상상력으로 복원해 낸 김훈의 '현의 노래' 독자라면 책의 장면장면에서 소설의 여러 대목을 겹쳐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토기, 철기 등 관련 유물을 감상할 때 도움되는 정보도 실었다.


저자 정은영의 이력은 독특하다. 광주 태생으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은 출판사였다. 과학도서 번역에 재능을 보이더니 문득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자가 됐다. 이후 국무총리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과 함께 가야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한편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야의 영역이다. '찬란한 고대 강국이었다'는 따위의 결론은 아니다. 신라도 백제도 아닌 가야는 지금의 경남북, 전남북에 걸쳐 자리했다. 출판사는 "가야사가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오면 영남 호남으로 반목하는 오랜 '생각의 경계'는 머물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표준어는 '잊힌'이 맞지만 입에 붙는 말 느낌을 살려 '잊혀진'을 제목으로 골랐다고.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정은영/율리시즈/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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