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에서 6년만에 임원 달 수도"…오너家 안 부러울 삼성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11.3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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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서 6년만에 임원 달 수도"…오너家 안 부러울 삼성


6년만에 임원 가능? 쌉가능(완전가능). 삼성전자 (77,600원 ▼400 -0.51%)가 29일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온다. 직급별로 승진에 적용됐던 체류기간을 걷어내고 능력에 따라 젊은 직원의 초고속 승진이 가능하도록 한 데 대한 반응이다.

새 인사제도에서는 이론상 사원으로 입사해 6년이면 상무로 승진할 수 있다. 사원·대리급인 'CL2' 직급에서 최소 2년 동안 상위 평가를 받고 과·차장급인 'CL3'에서 최소 3년 동안 상위 평가를 받아 부장급인 'CL4'로 진급하면 성과에 따라 1년만에 기업의 별인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 기존에는 20년 넘게 근무해야 임원을 달까 말까 했던 점을 감안하면 예상하기 어려운 파격이다. "삼성이 띄운 또 하나의 승부수"라는 얘기가 이어지는 이유다.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하고 우수 사원은 만 60세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트랙'도 도입했다. 상무가 실무 임원에 가깝다면 전무 이상은 의사결정을 하는 'CEO(최고경영자) 예비군'으로 설정하고 더 신속 과감하게 승진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임직원 평가도 전체 5등급에서 최상위 등급 10%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해 누구나 상위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동기 부여를 위해 꾸준히 고성과를 받는 직원에게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을 넘어서는 인센티브도 제공하기로 했다.



'동료 리뷰' 도입도 눈에 띈다. 다만 인기투표로 전락해 올초 카카오 등에서 빚어진 직원간 갈등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당분간 등급은 부여하지 않고 서술형으로만 평가하도록 할 방침이다.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사내 FA(자유계약) 제도' 도입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한 젊은 층) 직원들의 호응을 얻기 위한 인재양성 방안으로 보인다. 국내·해외법인간 교환 근무를 하는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도 신설해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키울 계획이다.

'뉴 삼성' 이정표
"사원에서 6년만에 임원 달 수도"…오너家 안 부러울 삼성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의 파격적인 인사제도 개편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시하는 '뉴 삼성'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 내부 사정에 밝은 재계 한 인사는 "선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인재제일 철학을 이어받은 이 부회장이 이달 중순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혁신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 올라선 기업 경영진과의 연쇄 회동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이번 제도 개편에 반영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4일 미국 출장 귀국길에 취재진을 만나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직급 파괴와 성과주의는 글로벌 빅테크를 이끄는 실리콘밸리에서는 불문율로 통한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에는 임원을 제외한 직원들의 직급 개념이 없다. 근속 연수나 경력 같은 연공서열이 아니라 현재의 성과와 미래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연봉과 성과급 등 보상이 이뤄진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입사 1~2년차 직원도 언제든 임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보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른 데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명확해져 성과 보상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실리콘밸리식 인사·보상 시스템은 국내 IT 기업들이 먼저 벤치마킹했다.네이버와 카카오는 수년 전부터 30~40대 CEO를 발탁했다. 네이버 차기 CEO로 내정된 최수연 글로벌사업지원부 책임리더는 만 40세, 1981년생이다. 카카오는 지난 4월 AI(인공지능) 연구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의 신임 대표로 1988년생인 김일두 팀장(33)을 선임했다. 네이버 AI 개발을 총괄하는 정민영 책임리더도 34세에 불과하다.

물론 급격한 변화에 따른 반발도 만만찮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는 성과 위주 인사·보상 시스템을 도입한 뒤 노조가 결성됐다. 노조는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 노조도 이번 제도 개편안에 대해 "무한경쟁과 불공정한 문화를 강화하는 인사 제도 개악안 도입을 반대한다"며 "발탁 승진 제도로 부서장의 권력은 더 커지고 직원들 사이엔 경쟁과 견제만 부추길 것"이라고 밝혔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IT 기업으로 우수인력이 유출되고 MZ세대 직원의 소통 욕구가 커지면서 안팎의 위기의식이 이번 인사제도 개편에 반영된 듯하다"며 "혁신의 내용을 넘어 노사 모두 치열한 글로벌 환경에 공감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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