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올 들어 미국 현지공장 신설에 착수한 TSMC와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에 이어 삼성전자도 미국 현지 투자를 확정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판도가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TSMC는 120억달러(약 14조2000억원)를 들여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인텔은 20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2개 지을 예정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초미세 공정의 파운드리를 완공하면 그동안 TSMC에 치우쳤던 애플·퀄컴·AMD 등 미국 대형 고객사를 끌어들일 기반이 마련된다"며 "파운드리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한 인사는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 정부와의 동맹 관계를 다지는 효과도 있다"며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삼성이 주도권을 노릴 수 있는 계기기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업체별 기술 로드맵를 보면 삼성전자는 TSMC보다 6개월 정도 빠른 내년 상반기 3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하면서 사실상 처음으로 TSMC를 앞선 기술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에서 이 같은 계획과 함께 2025년까지 파운드리 용량을 파운드리사업부 출범 첫해인 2017년보다 3배, 2026년까지 3.2배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100개 정도인 파운드리 고객사를 2025년까지 3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퀄컴·구글·테슬라·엔비디아 등 핵심 고객사가 있는 미국 공장 증설이 필수라는 게 삼성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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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와 삼성전자의 올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각각 52.9%와 17.3%로 차이가 크지만 '선단공정'으로 불리는 10나노미터 이하 공정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6대 4 정도로 줄어든다. 사실상 10나노미터 이하 시장은 양강체제로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또다른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10나노미터 이하 시장 비중은 2019년 4.4%에서 양사의 미국 신규 공장이 양산을 시작하는 2024년에는 29.9%로 확대될 전망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삼성전자가 지난 8월 이 부회장 가석방 직후 발표한 3년 동안 240조원 투자 계획의 첫 단추라는 평가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의 투자 결정이 지난 8월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지 3개월여만에 나왔다"며 "한국 법무부가 이 부회장 가석방을 결정할 당시 반도체·백신 역할론 등 경제적 효과를 강조한 데 대해 삼성이 화답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4일부터 미국을 방문했다가 이날 귀국하는 이 부회장은 미국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 협력을 구하면서 투자 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리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미국의 공급망 확보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의 최우선 사항"이라며 삼성전자의 미국 내 신규 공장 부지 선정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간기업인 삼성전자의 공장 신설투자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은 반도체 공급망에 쏟고 있는 백악관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반도체 공급망을 단순한 경제적 사안이 아니라 중국과의 경쟁과 결부된 전략적 사안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테일러시와 테일러시가 속한 윌리엄슨카운티, 테일러교육자치구 등 지방정부에서 삼성전자가 받는 세금 감면 혜택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