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페리클레스와 포퓰리즘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11.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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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김남국 교수


한국처럼 민주화 이후 30여년이 지난 사회에서 아직도 경쟁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경쟁정당을 적폐세력으로 공격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더구나 국민들은 수차례 정권교체를 통해 한 번의 선거, 한 명의 위대한 정치인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선거결과에 따라 나라가 엉망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영향받는 사람들은 대선 캠프 주변의 소수고 대부분 국민은 누가 집권하든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야 모두 포퓰리즘적 경향을 보이는 후보의 등장에도 선거열기가 아직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포퓰리즘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국민주권의 강화를 약속하는 감정적 선동을 통해 사람들을 정치현장에 끌어들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대선을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통해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위임한 권력의 대리자인 정치인들을 통제하고 법치의 이름으로 국민주권의 원칙을 제약하는 정치의 사법화를 견제할 중요한 계기라고 보면 포퓰리즘적 현상의 출현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작동하기 위해서도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국민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는 대상이 분명해야 하고 후보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한다. 예컨대 부동산 폭등이나 권력형 비리가 분노의 대상이라면 이를 선동해낼 사람은 이런 분노의 원인과 무관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 후보는 대장동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으로 이미 분노를 선동하는 구심점이 되기보다 정치적 희화화의 대상이 됐다. 특히 분노는 슬픔의 감정이 더해질 때 빠르게 전염되고 적의를 키우며 폭발한다. 세계적인 포퓰리즘적 계기들은 대체로 애도를 동반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에서 그런 계기는 보이지 않는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부패하지 않는 것이 민주정체(民主政體)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봤다. 페리클레스가 뛰어난 점은 시민들에게 시민의 덕목을 가르치고 본인도 그런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을 의무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는 BC 431년 전사자를 위한 추도연설에서 산자와 죽은 자의 모든 후손에게 아테네가 보상할 것을 약속한다. 전사자를 애도하면서 아테네가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이익을 위해 통치되는 민주정체이자 법 앞에 평등한 나라라고 주장하며 애도의 전염과 분노를 엘리트가 아닌 적에게로 돌린다.



인류역사에서 200년 이상 민주주의가 지속된 오직 두 사례로 미국과 함께 평가받는 아테네도 페리클레스 시대를 지나 플라톤 시대에는 시민들의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물질적인 것 이외의 무관심 속에 자유와 평등은 무질서와 불공정으로 변질됐다고 비판받는다. 때마침 퓨리서치센터의 2021년 조사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에 대한 17개국 조사에서 대부분 나라가 '가족'을 1순위로 꼽은 반면 한국은 '물질적 부'를 1순위로 꼽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물질적 부를 향한 국민들의 욕망 사이에서 여야 후보의 포퓰리즘적 선동마저 성공이 불확실하다면 평등과 정의의 전면적인 실현보다 부정의의 고립이라는 방어적 교정을 통해 점진적 개혁을 차분히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 즉 오류 가능성과 교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회악의 고립을 시도하면서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자유를 향해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의 적극적 실현보다 최대 다수의 최대 공포로부터 해방이라는 소극적 접근을 선택하는 쪽이 오히려 더 빠른 개혁의 길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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