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만든 국내 우주항공 전문가 "0.1mm 오차와의 전쟁"

머니투데이 사천(경남)=최민경 기자 2021.11.17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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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누리호 개발 주역' 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

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사진제공=KAI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사진제공=KAI


"누리호는 맨 땅에 헤딩하듯이 개발했기 때문에 조립·제작 공차(오차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최대한 정확도를 높여 제작하면서 0.1mm도 안 되는 오차 범위 내에서 싸웠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최초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총조립과 1단 탱크 제작을 담당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KAI의 우주사업을 이끄는 미래사업부문장 한창헌 상무는 누리호 조립 설계 과정에서 막막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상무는 서울대학교 항공공학과 박사 출신으로 우주항공 분야에서만 23년간 일해온 스페이스 전문가다. KAI의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개발 엔지니어로 시작해 최초 국산헬기 수리온 기획, LAH(소형무장헬기) 사업관리, 누리호 위성 발사체 개발 총괄까지 굵직한 사업들을 맡아왔다. 올해 미래부문장을 역임하며 무인기와 훈련체계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만든 누리호…"탱크 공정 개발만 3년 걸려"
KAI가 발사체 사업을 시작한 건 2014년 누리호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서다. 한국형 소형위성발사체 나로호(KSLV-1) 총 조립을 맡았던 대한항공이 우주 개발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항공기 제작 능력이 있는 KAI가 제안을 받았다. 한 상무는 "KAI는 한국 항공우주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으로 탄생한 기업"이라며 "한국형 발사체를 산업화하고 수출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사업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발사체 사업은 처음인 만큼 누리호 개발 과정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앞서 언급된 공차 설정 외에도 1단 추진제탱크 용접 과정에서 품질을 유지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진제탱크는 산소가 없는 우주에서 발사체 연료를 태울 수 있도록 액체산소를 실은 산화제탱크와 연료탱크로 구성된 발사체의 핵심부품이다. 2016년부터 국산화를 하기 위해 KAI가 제작을 맡게 됐다.

특히 탱크는 용접 공정이 많은데 용접 공정이 거의 없는 항공기만 제작했던 KAI로선 탱크 제작 과정이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누리호 전체 길이 중 1단 탱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가까이 된다. 산화제탱크는 직경 3.5m, 길이 10m에 이르고 연료탱크도 직경 3.5m, 길이 6.6m다. 거대한 크기인 만큼 만들기가 까다로웠고 아무나 맡을 수 없는 과제였다.

한 상무는 "1단 탱크는 알루미늄 판을 롤러로 둥그렇게 말고 용접한 뒤 마지막으로 덮개를 붙여서 제작한다"며 "용접할 때 열을 가하면 형태가 조금씩 변형되는데 이런 변형을 최소화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KAI는 3년 가까이 1단 탱크 공정 개발에 시간을 들이고 노하우를 쌓았다"며 "지금은 자재만 있으면 불량 없이 계획대로 탱크를 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AI 종포사업장 누리호 1단 추진제탱크/사진제공=KAIKAI 종포사업장 누리호 1단 추진제탱크/사진제공=KAI
다행히 누리호 1차 발사에서 발사체가 700km 상공에 성공적으로 도달하면서 KAI가 맡았던 1단 탱크와 총 조립엔 문제가 없었다는 게 확인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단부 엔진 연소가 조기 종료된 것이 문제라고 보고 내년 5월 2차 발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KAI는 2차 발사가 성공하면 누리호의 경제성을 높이고 양산 체제를 본격적으로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한 상무는 "발사체 제작은 오차 없이 정확도가 100%에 근접할수록 비용이 많이 든다"며 "누리호 1차 발사 과정에선 KAI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확도와 품질을 유지하며 작업하다 보니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리호를 산업화하기 위해선 조립공정을 효율화해 공정 시간을 줄이고 오차 허용 범위 내에서 정확도와 경제성을 적절하게 타협해야 한다"며 "이것이 누리호 발사 성공 이후 KAI의 남은 과제"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선 앞으로 누리호를 5차례 추가 발사하고 2030년엔 누리호에 달 탐사선을 싣는 것까지 계획 중인데 이 과정에서도 KAI의 역할이 클 전망이다. 한 상무는 "누리호는 미래에 우주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 엔진 출력을 키워야 하고 탱크도 커져야 하는데 이를 대비해 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 상무는 "앞으로 1단 탱크 직경은 3.5m보다 더 커지고 지금보다 더 가볍게 만들 것"이라며 "기존 탱크 소재인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복합재를 사용하는 것을 고민 중이고 용접 방법도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위성 수출 머지않아…3년 내 위성사업 연 매출 5000억원 달성"

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사진제공=KAI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사진제공=KAI
한 상무는 누리호에 탑재되는 위성 사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부가 운용하는 위성 사업은 모두 KAI가 맡아왔다. 누리호에 탑재되는 차세대 중형위성은 KAI가 주관하고 있고, 다목적 실용위성은 KAI가 본체를 만들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공급한다. 정지궤도 위성도 KAI가 컴퓨터와 구조물을 공급하고, 조립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상무는 "차세대 중형위성 2호는 마지막 작업 중이고 4호는 설계가 상당히 진척됐다"며 "2024년 누리호에 탑재될 3호도 이제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했고 내년부터 5호도 개발한다"고 말했다. 발사체 검증용으로 개발 중인 차세대 중형위성 3호는 KAI가 수출까지 내다보고 만드는 위성이다.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KAI의 독자 플랫폼으로 개발하고 있다.

위성사업은 크게 항법위성과 통신위성, 관측위성으로 나뉜다. KAI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KPS(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사업에도 참여한다. 대형 위성 본체를 제작하는 사업을 해왔던 만큼 체계종합업체로서 KAI의 역할이 클 전망이다.

KAI는 저궤도에 통신위성을 띄워 전 세계 어디서나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우주인터넷' 사업도 준비 중이다. 한 상무는 "한국처럼 통신 인프라가 잘 돼있는 나라에선 사업성이 크지 않겠지만, 5G 이후 6G 통신에선 저궤도 통신위성이 필수적이라 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측위성 사업은 위성운용으로 확보한 사진이나 영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배포하는 구독서비스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KAI는 지난 9월 국내 항공 영상 분석 전문업체 메이사 지분 일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 맥사(MAXAR)와 유럽 에어버스의 구독서비스 사업을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실제로 KAI 군용기 구매를 원하는 일부 국가들은 KAI가 만든 위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위성 수출도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 한 상무는 "KAI의 위성사업은 매년 두배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 연 매출이 2800억원 수준인데 2~3년 내 5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위성을 포함한 우주사업 매출 규모가 충분히 커지면 미래사업부문에서 독자 사업부로 독립시킨다는 계획이다.

한 상무는 우주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주산업의 제일 큰 수요자는 정부"라며 "기업이 우주사업을 준비하면 정부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계획 수정 없이 중장기적으로 수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위성을 공급하기만 하고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한국 위성 활용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서비스 산업을 열 수 있는 수요자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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