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교수
노 전대통령에게 부정적 감정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는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한 신군부 2인자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내란목적 살인 등 죄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번 장례식은 이례적으로 회복적 정의관의 실현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5·18 당시 최후의 항전과 전남도청 사수를 결의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가 빈소에 조문하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은 기적에 가깝다.
정말 진정으로 용서한 것일까. 그렇게 용서해도 되는 것일까. 그는 어떻게 빈소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런 질문에 '임민혁이 만난 사람'(조선일보)은 박남선씨가 조문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노재헌씨가 처음 광주에 왔을 때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했는데 만나지 않았다. 두 번째부터 만났는데 나는 '아들이 와서 사죄하는 것보다 당사자가 직접 와서 육성(肉聲)으로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 전대통령은 계속 누워 있고 필담을 겨우 하는 정도라고 하더라. 병상에서 끌고 내려오라고 할 순 없지 않나. 노씨는 그후에도 계속 내려왔다. 5·18 행사 때 쓱 참배하고 가버리는 정치인들보다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마지막 만났을 때 노씨에게 5·18 기념배지를 달아주면서 '5·18 정신 꼭 기억해라. 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찾아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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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이라는 행위를 통해 훼손된 공동체의 정치적 미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용서와 약속만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잘못과 죄의 수렁에서 그리고 보복의 악순환에서 탈출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울려 살 수 있게 하는 회복의 치료제라고 보았다.
5·18단체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박남선씨의 용서와 화해의 손짓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박남선씨는 목숨을 건 시민군 참여에 이어 용서와 화해까지 헌신하면서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애국시민의 미덕을 보여줬다. 이제 우리가 그의 영혼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