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아파트 '보류지 24평' 27억에 사라고? 현금부자도 "싫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21.10.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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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디에이치 라클라스' 견본주택 현장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2018년 '디에이치 라클라스' 견본주택 현장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아는 사람에게만 정보가 교류되고 거래된다는 보류지 물건이 유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류지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조합원 수 등이 달라질 것에 대비해 일반에 분양하지 않고 남겨둔 물량으로, 청약통장 등 자격요건을 갖출 필요가 없어 현금부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보류지의 매력은 시세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있었다. 그런데 올해 보류지 입찰 공고를 낸 단지들은 시세와 큰 차이 없는 가격을 제시했고, 결국 현금부자들 조차 외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남인데도 보류지 안 팔려…"가격 매력 없다"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삼호가든맨션3차)가 이날 보류지 5가구 매각 입찰을 받는다. 최저 입찰가격은 전용 59㎡가 27억원, 전용 84㎡가 33억원이다. 최고가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최저 입찰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야 낙찰받을 수 있는 구조다.

단지에서 제시한 최저 입찰가격은 시세와 차이가 없다. 전용 84㎡ 호가가 33억원에 형성돼 있다. 따라서 여러 차례 유찰된 다른 단지의 사례를 보면 이곳 역시 유찰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앞서 올해 2월부터 보류지 매각에 나선 서초 래미안리더스원(서초우성1차)은 두차례 유찰돼 이달 3차 매각 공고를 냈다. 총 9가구 매각에 나섰으나 이달까지 4가구를 마무리 짓지 못한 탓이다. 단지 최저입찰가는 △전용 74㎡ 26억원 △전용 84㎡ 30억원 △전용 114㎡ 35억원이다.

이 단지도 마찬가지로 시세와 큰 차이 없이 최저입찰가가 정해졌다. 전용 74㎡는 27억원(8월)에 실거래 됐고, 전용 84㎡는 30억원(8월), 전용 114㎡는 36억5000만원(9월)에 각각 거래됐다. 최저입찰가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야 낙찰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현재 시세 대비 큰 매력이 없다.

녹번역e편한세상캐슬(응암2구역 재개발) 보류지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3차례 유찰돼 이달 4번째 매각에 나선 상태다.


조합 '높은 콧대'에 보류지 매각가마저 고공행진…"현금부자 관심 가질 이유 없어"
인기가 높았던 보류지 물건에 유찰 사례가 늘어나는 건 조합측에서 가격을 너무 높게 잡은 탓이라는 지적이다.

보류지 최저 입찰가는 조합이 시세와 옵션 등을 고려해 임의로 정한다. 통상 시세보다 소폭 낮게 가격을 매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현재 시세나 호가와 비슷하면 매수자가 굳이 보류지에 입찰할 이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보류지 매각에 나선 일부 조합은 최저입찰가를 낮추지 않고 오히려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정했다. 신축 아파트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가격을 높게 잡아도 매각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게 정비업계의 분석이다.

보류지 매각은 계약과 중도금, 잔금 등을 짧은 시간 안에 치러야 하다 보니 단기간에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현금 부자들 위주로 거래가 돼 왔다. 그런데 가격 매력이 사라지자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보류지는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어서 유찰된 사례를 찾기 힘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며 "그런데 보류지 최저입찰가격이 시세와 비슷하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을 계산해봤을 때 별다른 이득이 없으니 현금 부자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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