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계가 아닌 사람을 공무원으로 쓰는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21.10.1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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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개그 중 이런 게 있다. 두 명의 슈퍼카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과속 경쟁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는데, 기를 쓰며 이들의 뒤를 쫓아간 경차 운전자도 같이 끌려왔다. 무리해가면서 이들과 같이 속도를 낸 이유를 묻자 경차 운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고속도로 규정상 차간 거리 100m를 유지하라고 해 열심히 지켰습니다." '차간 거리 100m 이상'이라는 규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듯 법도 허점이 존재한다. 해운업체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해운법이 그렇다. 고객인 화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당국에 신고를 한다는 전제 아래 해운사간 가격과 노선을 협의해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당국에 신고한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다. 해운업계의 특수성과 공동행위의 국제적 보편성을 인지하고 있는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행위를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는 무조건 담합으로 보자는 입장이다.

해수부는 영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한다. 담합이라는 건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공동행위에 붙이는 이름이고, 해운업계 특성상 공동행위는 오히려 화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걸 공정위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성혁 해수부 장관이 국무회의 자리 등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직접 수차례 설명을 했다는데, 조 위원장은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건 쉽다. 오히려 상황에 맞게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개별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게 어렵다. 민간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법 해석을 폭넓게 하는 행위를 사람들은 '적극행정'이라 부른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쇠락한 데는 관료들의 기계적 업무처리 태도도 한몫 했다. 원칙에 흐트러짐 없이 처신했으니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이런 일처리 방법은 일의 결과야 어찌되든 자신의 자리만 지키겠다는 보신주의에 다름 아니다. '원칙대로'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해 모든 해운 업체에 8000억원의 과징금을 물리겠다는 공정위에게 기계와는 다른 모습의 적극행정을 기대한다.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사진=머니투데이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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