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수리받을 권리(Right to Repair)'가 주목받고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는 늘어나는데 수리비가 지나치게 비싸거나 부품이 없어 작은 고장조차 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자 제조업체들에 수리권 보장을 요구하는 여론이 미국·유럽에 이어 한국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13 시리즈 판매가 시작된 8일 서울 강남구 Apple 가로수길에서 고객들이 아이폰13을 살펴보고 있다. 2021.10.8/뉴스1
공식 AS센터에서도 수리는 쉽지 않다. 김 부의장이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애플 단말기 관련 피해구제 자료를 살펴본 결과, 아이폰·아이패드 제조사인 애플은 고장 사례마다 수리 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이 그때그때 달랐고, 수리 불가 결정의 근거조차 대외비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수리 맡긴 제품을 '애플 정책'을 이유로 돌려주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 딜라이트샵에 삼성전자 폴더블폰인 갤럭시Z폴드3와 갤럭시Z플립3가 진열돼 있다. 2021.9.6/뉴스1
이 시각 인기 뉴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제조업자가 소비자에게 AS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미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부터 도매가 99달러(약 11만원 이상 기기에 대해서는 3년, 그 이상 가격인 기기는 최대 7년까지 수리할 수 있도록 서비스 문서와 부품 등을 수리업체에 제공하도록 했다.
수리받을 권리는 환경문제와도 연결된다. 스마트 기기를 고쳐 쓰면 그만큼 전자 폐기물을 줄일 수 있어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유엔대학 등이 공동 발간한 '글로벌 전자 폐기물 모니터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에 버려진 전자폐기물은 5360만톤에 달했는데, 이는 5년 전보다 21% 증가한 규모였다. 또 오는 2030년에는 전세계 전자폐기물이 연간 7400만톤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유럽환경국은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 수명을 1년 더 연장하면 2030년까지 매년 210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사진제공=뉴스1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공식 제조업체가 아니면 내부를 분해하기 쉬운 구조가 아니다"라며 "수리 편의성까지 고려해 제품을 설계하면 지금보다 무게가 늘어나거나 디자인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소비자 선택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국내의 수리권 논의는 발을 뗐다. 김상희 부의장은 지난달 휴대폰 수리권 보장법(단말기 유통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합리적 이유 없이 스마트폰 수리에 필요한 부품·장비 등의 공급·판매를 거절하거나 지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게 골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리업체를 늘리고 사설업체에 수리정보 제공을 보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품 설계 단계에서 수리와 재활용 가능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어떻게 적용할지, 충전기 등 부속품 수명은 얼마나 늘릴지 등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전자기기 전반에 대한 수리권 도입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