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가 불혹 맞냐고? 지역인재 9급 시험 난이도에 허탈한 공시생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1.09.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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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지역인재 제도의 명암④ 고졸 9급 인재채용, 균형발전 취지와 달리 역차별 논란
평이한 문제, 낮은 경쟁률에 일반 공시생 '허탈'

편집자주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역인재' 개념을 도입해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채용에 활용해왔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 출신을 우대하고, 서울 청년들을 지방에 내려보내는 선순환을 기대한 것이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대를 그나마 버티는 힘이 지역인재 제도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공공기관 채용 및 공무원 시험 과정에서 역차별 논란 등도 여전하다. 지역인재 제도의 현황과 한계를 짚어본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 국어 과목 1~3번 문제(왼쪽)와 지역인재 9급 필기시험 국어 과목 1~3번 문항 비교. /사진=사이버국가고시센터지난해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 국어 과목 1~3번 문제(왼쪽)와 지역인재 9급 필기시험 국어 과목 1~3번 문항 비교. /사진=사이버국가고시센터


(다음 중) 해당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은?

①20세-약관(弱冠) ②50세-불혹(不惑)

③60세-육순(六旬) ④70세-고희(古稀)



지난해 이맘때 치러진 '2020년도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 선발 필기시험' 국어 과목에서 나온 문제 중 하나다. 정답은 2번. 1020 세대가 부모세대와 달리 한자에 익숙하진 않아도, 나이별 이칭(異稱·달리 부르는 명칭) 중 불혹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해당 시험문제가 공유되자 허탈감을 느꼈다고 토로한 공시생이 적지 않았다. 국가·지방직 일반공무원 시험과 비교해 훨씬 쉬운데, 결국 같은 9급으로 일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경쟁률도 훨씬 낮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정부가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지역인재 채용제도를 두고 MZ(밀레니얼+제트)세대가 역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지역인재 제도가 국가균형발전에 도움이 되긴 커녕 공무원 채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지역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년 늘어나는 정원, 줄어드는 경쟁률
50세가 불혹 맞냐고? 지역인재 9급 시험 난이도에 허탈한 공시생들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인사혁신처는 2012년부터 특정 고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9급 '지역인재 추천채용제'를 운영 중이다. △공직의 지역 대표성 제고 △국가균형 발전 △고졸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를 위해 도입했지만, '공정'이 화두로 떠오르며 공직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 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인 MZ세대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낳고 있다.

바늘구멍에 통과하는 만큼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 통념과 달리 경쟁률이 낮단 점에서다. 인사처에 따르면 연도별 지역인재 선발인원은 매년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인재 9급은 △2016년 159명 △2017년 170명 △2018년 180명 △2019년 210명 △2020년 244명을 뽑았다. 지난 11일 필기시험을 치른 올해는 32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선발한다.


반면 경쟁률은 매년 줄어든다. 매년 정원은 늘어나지만 채용 대상이 학교장 추천을 받은 특성화·마이스터고 졸업자만 응시할 수 있어 수요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6년 6.5대 1을 기록했던 경쟁률은 지난해 4.4대 1로 낮아졌고, 올해는 1109명이 지원해 3.5대 1로 하락했다. 올해 9급 국가직 공채시험 경쟁률이 35대 1을 기록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

또 다른 논란의 지점은 형평성이다. 채용 전형은 달라도 동일한 9급으로 입사하는데 지역인재 추천의 필기시험 난이도는 평이한 수준이다. 국가직 9급이 필수·선택과목 등 5개 시험을 치러야 하는 데 반해 지역인채 추천은 국어, 한국사, 영어 3과목만 응시하면 된다. 해당 과목들도 지엽적인 문제가 많은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쉽지 않은 일반 9급에 비해 수월한 편이다.
50세가 불혹 맞냐고? 지역인재 9급 시험 난이도에 허탈한 공시생들
공시생들은 물론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역인재 채용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특히 최근 들어 사회 화두로 '공정'이 떠오르며 경쟁을 뚫고 들어온 공무원들이나 일반 직장인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동일한 일을 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 기회의 공정을 빼앗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공부 안하는 게 더 이득일 정도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박탈감이 커지면서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뒤 공기업에 취업한 윤모씨(30)는 "이럴거면 굳이 수능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온 뒤 치열한 경쟁률을 뚫을 필요 없이 처음부터 특성화고에 가면 되는 게 아니냐"며 "기울어진 경쟁이나 마찬가지인데 스무살에 입직하면 호봉에서도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처 측은 "사회 인적구성이 점차 다양해지고 MZ세대 등장 등 기존 가치관광 생활방식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고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를 넘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균형인사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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