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스타트업, 사람을 향하다

머니투데이 최항집 센터장 2021.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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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투데이 窓]스타트업, 사람을 향하다


어느 가을밤, 도나우강이 가로지르는 오스트리아 도시 린츠는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으로 도심 전체가 뒤덮였다. 콘서트홀에서 시작된 음악은 강변에 놓인 거대 스피커를 통해 강을 따라 흘렀고, 동시에 라디오 전파를 타고 도심 구석까지 전달됐다.

미리 공지된 내용에 따라 시민들은 창을 열고 창가에 라디오를 켜 두었다. 택시운전사들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차창을 내린 채 차를 운행했다. 도심 곳곳이 거대한 사운드 소스가 됐고, 모든 시민은 '클라우드 오브 사운드'(Cloud of Sound)라는 퍼포먼스의 참여자가 됐다. 1979년 9월의 일이었다. 예술적 상상력에 더해 당시 동원 가능한 기술을 끌어모아 시민들의 참여 속에 완성된 이벤트다.



이를 계기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가 설립됐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9월이면 세계 각지로부터 창의적인 행동가들과 10만여명의 참여자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 모인다. 미래로 한발 나아가기 위한 혁신기업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로봇과 사람의 공존, 미래자동차와 사람의 소통, 사람 중심의 사옥설계까지 다양한 문제의 재정의가 이뤄졌다.

각종 국제행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드론쇼가 6년 전 이곳에서 첫선을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린츠는 나치독일 시절부터 만들어진 철강도시 이미지를 벗었고, 2009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린츠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대표적인 도시브랜딩 성공사례로 종종 소개된다.



회를 거듭하면서 페스티벌의 규모도 커지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역할도 확장됐다. 하지만 이들의 철학은 한결같다. 예술과 기술은 사회를 향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맨에게 붙는 수많은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과 기술은 원래 구분이 없었다. 예술과 기술은 그리스에서는 '테크네'(Techne), 로마에서는 '아르스'(Ars)라는 통합개념으로 불렸다. 둘 사이의 구분이 생긴 19세기 이후에도 예술과 기술은 서로를 밀고 끌었다.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예술가와 같다"는 말을 남긴 아인슈타인은 음악으로부터 연구의 영감을 얻었고, 그의 상대성이론은 미술, 음악, 문학, 건축, 영화 등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샌프란시스코의 문화가 창업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 '버닝맨' 이벤트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헤아릴 수 있겠다.


제2의 벤처붐을 넘어 스타트업의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 혁신기업을 '벤처'보다는 '스타트업'으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로 변하면서 제품보다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중심이 됐다.

사용자 경험에 의한 가치가 경쟁력이 됐으며 사용자와의 인터페이스를 넘어 인터랙션이 중요해졌다. 개발자들에게는 제품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사고가 요구되고 있다. 연구실에서 개발되던 방식은 시장에서 사용자와 함께 개발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기존 시스템을 사람 중심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배달되듯이 터치 한 번으로 상품이 배달될 수 있도록 물류망을 구축하고 있고, 정보와 화폐의 탈중앙화를 시도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를 돌보는 제품과 기업에 열광하는 팬을 만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타트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고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제 스타트업은 사람을 향하고 있다. 빅데이터, AI(인공지능)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러한 기술이 사람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핵심도구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맞이하는 새로운 방식과 문화로 스타트업을 정의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그리고 스타트업 시대에는 '아르스싱킹'(Ars Thinking)의 태도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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