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적인 메시지는 없었지만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복귀 이후 새로운 방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지난 13일 광복절 가석방으로 복귀한 지 11일만에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으면서 삼성 특유의 초격차 경영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불거진 반도체 리더십 약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결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지난 5월 K-반도체 전략에서 발표했던 것보다 액수가 더 늘었다"며 "TSMC나 인텔에 비해 투자 결정이 늦었지만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본격적인 추격전이 이제 제대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통신' 미래먹거리 확보
삼성전자는 이날 반도체 외에 전략사업 부문으로 바이오와 차세대 통신, 신성장 IT를 꼽았다. 내부적으로 이들 분야에 앞으로 3년 동안 20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2의 반도체'로 키우는 바이오 부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송도에 건설 중인 4공장 총 투자액이 1조74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투자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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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의약품 외에 백신과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 CDMO(위탁개발생산)에서도 초격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최근 국내 코로나19(COVID-19) 백신 수급 문제와 맞물려 백신 자체 생산 역량 강화로 이어질지를 두고도 관심이 쏠린다.
6G 등 차세대 통신 기술과 인공지능(AI)·로봇·수퍼컴퓨터 등 신성장 IT 분야 투자도 그동안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AI 등 신성장 산업 분야 인재 확보에서 몇몇 성과가 있었지만 눈에 띄는 투자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역할' 제시…경제·외교 다중 포석
업계에서는 국내 투자와 함께 해외 투자 규모도 윤곽이 드러나면서 조만간 미국 파운드리 투자 관련 발표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텍사스·뉴욕·애리조나 등을 후보지로 현지 지방정부와 세제 혜택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현지 파운드리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 전략에서 한미 정부의 외교 관계에도 훈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상보다 투자 규모가 크다"며 "이번 투자로 다소 정체됐던 삼성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내 일자리 문제, 한미 관계 등 국가 경제·외교 전반에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