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상식을 깨는 혁신이라는 좁은 문

머니투데이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2021.08.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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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1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1


상식이 깨지면 대부분 불편하다. 5년 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도 그랬다. 당시 상식적으로 이세돌 9단이 우세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알파고의 압승이었다. 당황했고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에 두려웠다. 알파고는 두 번째 대국에서 5선에 돌을 뒀다. 3선은 실리, 4선은 세력이라는 5000년 역사의 바둑 상식을 깨는 수였다. 모두가 의아해한 그 수는 중앙싸움에서 주도권을 담보하는 경이로운 수임이 밝혀졌다. 알파고가 연 바둑 신천지에 짜릿함을 느꼈다. 상식이 이처럼 발전적으로 깨지면 쾌감을 준다.

올해 우리는 짧은 장마 후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력부족을 걱정했다. 한낮에 기온이 치솟으면 냉방을 위한 전력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봤다. 전력소비가 피크를 치는 오후 3시가 되면 전력예비율이 위험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전력예비율은 넉넉했다. 전력거래소가 공급하는 전력피크 시점이 2016년부터 오후 3시에서 오후 5시로 이동한 것이다. 전력당국은 가정과 작은 공장에 설치해 자체소비하는 15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패널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전력공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낮은 평가를 받던 태양광의 재발견에 짜릿했다.



발전적으로 상식을 깨는 주된 동력은 역시 과학기술이다. 그래서 미국 국민은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운영을 지향하는 조 바이든 정부를 선택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고 연구·개발 100조원 시대를 연 이유도 다르지 않다. 연구·개발 성과는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물 흐르듯 전달된다. 기초연구자는 창의성을 발휘해 지금까지 없던 기초원천 기술을 개발한다. 후속 연구자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기초원천 기술을 선택해 완성도를 높인다. 완성도를 높인 혁신기술은 산업계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연구·개발 흐름의 상식을 깨고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거나 기대되는 두 사업이 있다. 먼저 혁신기술의 기술사업화를 목표로 삼은 A사업이다. 지금까지 없던 제품이나 신공정을 도입하려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산업기술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산업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혁신기술을 보유하고 연구자와 그룹을 찾아 연결한다. 부족하거나 결핍된 혁신기술에 대해 연구·개발을 한다. 실제 산업계 수요를 기반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하니 높은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두 번째 B사업은 과학적 중요문제를 해결하고 대형 연구성과 창출이 목표다. 과학자 모두에게 주제를 제안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수백 건의 후보주제를 발굴했다. 공개토론회와 설문조사를 거쳐 도전할 문제를 정했다. 다음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방안을 연구자에게 재차 물었다. 접수한 우수한 방안을 모아 제안요청서(RFP)를 만들었다. 문제가 훌륭한 만큼 탁월한 성과를 기대한다.

A사업은 견인(pull)형 전략을 채택하며 연어처럼 일반적인 연구방향을 거슬러올랐다. 밀기(push)형 전략을 채택한 B사업은 개방형 집단지성으로 연구기획을 하는 파격을 택했다. 두 사업 모두 반복적으로 시행되고 검증돼 상식으로 굳어진 기존 연구기획 방식 대신 혁신을 선택했다. 위험하고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끝없이 보완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터다. 하지만 고위험·고수익이라는 말은 주식투자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감히 성경말씀의 지혜를 빌리고자 한다.

상식을 깨는 혁신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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