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추정 진단서' 언제까지 두고만 볼텐가

머니투데이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2021.07.22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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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영 변호사신민영 변호사


할아버지는 두 번 진단서를 제출했다. 사건 직후 제출한 진단서에는 없던 '우측 어깨 및 우측 등 부위 손상, 좌상' '양측뺨 손상'이 그로부터 한 달 후 제출된 진단서에는 버젓이 적혀 있었다. 수상한 점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첫 번째 진단서에는 할아버지가 갈비뼈 L2-3부위에 압박골절의증이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두 번째 진단서에는 갈비뼈 L3-4부위에 압박골절의증이 있다고 기재돼 있었다. 골절이 이사라도 다닌다는 얘기인 건가. 게다가 '의증'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보이지만 사실 그냥 의심스럽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안은 커피숍 주인을 사이에 둔 40대 피고인과 할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할아버지가 커피숍에 와 있는 피고인에게 시비를 걸자 피고인은 말다툼 끝에 침을 뱉었을 뿐인데 이튿날 할아버지가 "갈비뼈가 부러졌다"며 고소했다는 것이 피고인의 주장이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커피숍 주인과 피고인이 함께 자신을 때렸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피고인이 자신을 벽으로 밀어붙이고는 복서처럼 좌우펀치를 날렸다고 했다가, 또다시 말을 바꿔서는 피고인이 자신을 걷어찼다고 주장했다. 할아버지의 앞뒤가 안 맞는 주장에도 피고인이 상해죄로 기소돼 사건이 법정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진단서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본 진단서는 그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진단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환자의 주관적 증상, 그러니깐 아프다는 환자의 말과 일부 객관적 징후만 있어도 발급할 수 있는 임상적 추정 진단서고 나머지는 검사결과와 같은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근거가 있어야만 발급할 수 있는 최종진단 진단서다. 다시 말해 임상적 추정 진단서는 환자의 말에 기초해 의사가 자신의 추정을 적은 진단서고, 최종 진단 진단서는 환자의 말뿐만 아니라 객관적 검사결과가 뒷받침돼야만 발급되는 진단서다.

둘 중 형사재판에 주로 제출되는 진단서는 무엇일까. 내가 알기론 추정 진단서다. 지금껏 담당한 사건에 등장한 진단서는 대부분 추정 진단서였다. 최종 진단 진단서를 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러운 "아프다"는 주장을 듣고 그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한 것을 적다 보니 맞은 지 한달 만에 상처가 발생하거나 상처가 이사를 다니는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누구라도 당장 병원에 가기만 하면 2주 진단서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오랫동안 세간을 떠돌고 있다. '다툼이 생기면 일단 병원에 가서 진단서부터 끊으라'는 말도 함께 돌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얘기가 통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추정 진단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단 의료계 차원에서 임상적 추정 진단서를 계속 발급하는 게 옳은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진단을 스스로도 책임질 수 없는 진단서가 외부에 돌아다니도록 두는 것은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수사기관과 법원도 추정적 진단서는 접수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진정 국민에게 와닿는 수사개혁, 사법개혁은 이런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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