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개를 좋아하십니까?

머니투데이 이윤학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2021.07.1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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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대표이윤학 대표


며칠 전이 초복(初伏)이었다. 원래 복날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초복은 하지가 지난 후 세 번째 경일(庚日)이고, 중복은 네 번째 경일이다. 경일은 갑을병정… 하는 천간(天干)의 일곱 번째가 경(庚)인데 경에는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 있어 아무래도 삼복더위에는 몸이 지치고 음식도 상하기 쉬운 때여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뜻에서 경일로 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 초복은 하지가 지난 세 번째 경일인 7월11일이고 중복은 열흘 뒤인 21일이 된다. 그리고 말복은 입추가 지난 첫 번째 경일인 8월10일이다. 통상 중복과 말복 사이가 스무날이 넘으면 월복(越伏)이라 해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월복이라 걱정이 앞선다. 복(伏)은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 해서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꺾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삼복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보하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복달임'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삼계탕, 팥죽, 그리고 지금은 많이 없어진 보신탕 등이다.



그런데 20년 전 "개를 좋아하십니까"라고 누군가 물었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였다. 지금은 개를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견 시대지만 20년 전 이렇게 물었다면 십중팔구는 보신탕을 좋아하느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말의 의미와 기능도 바뀌어간다. 요즘 소녀들에게 꿈을 묻는다면 아마도 '현모양처'(賢母良妻·지혜로운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라고 답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여자고등학교의 급훈으로 버젓이 걸려 있었다. 현모양처는 1900년대 초 개화기에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처음 등장한 어휘지만 양성평등 시대인 지금은 이미 용도폐기 수준이 돼버렸다.

주식시장의 주도주 논쟁에서 늘 등장하는 성장주(Growth stock)와 가치주(Value stock)의 정의도 이젠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단순히 PER(주가순수익비율)을 기준으로 고PER는 성장주, 저PER는 가치주로 분류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시장이다.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떨어지고 기업들의 무형자산(Intangible Asset)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잣대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다면 성장주와 가치주의 일률적인 선 긋기는 무의미하다. 현재 대표적 가치주로 분류되는 SK텔레콤은 1990년대엔 최고의 성장주였다. 2004년 반도체 사이클이 마무리된 이후 삼성전자는 힘 빠진 가치주였지만 2010년 모바일혁명 이후 다시 성장주로 변신했다.



궁극적으로 '성공한 성장주'는 시간이 지나면 가치주가 된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환경 속에 기업의 혁신 노력이 가치주를 다시 성장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고정된 것은 없다, 성장주가 좋다느니, 가치주가 좋다느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개화기 시절 근대적 여성의 표상이던 현모양처가 무용지물이 됐듯이 성장주와 가치주 논쟁은 무의미하다. 마치 오늘날 "당신은 개를 좋아하십니까"를 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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