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안암골 호랑이 CEO가 피봇팅한 이유[유니밸리]

머니투데이 최태범 기자 2021.07.20 08:30
글자크기

[유니밸리-고려대학교 3-4]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터부시하는 심리상담, '사담'으로 비용·부담 낮춰"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좋았다. 대면으로 진행되는 아이돌 행사의 스케줄, 스포츠 경기, 화장품 세일기간 등 관심일정을 구독하는 플랫폼 '린더'로 세계인의 일상을 파고들며 적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대면 행사가 사라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큰 위기를 겪자 함께 사업에 뛰어들었던 팀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업을 피봇팅(pivoting·다른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룹 심리상담·멘탈공유 프로그램 '사담'은 이 같은 고민의 끝에서 지난 5월 탄생했다.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는 4년여간 이어온 린더가 휘청거린 이후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됐고 직접 상담을 받던 중 겪었던 불편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담을 기획했다.

오 대표는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정말 힘들지 않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가장 심각한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며 "사람들과 눈 마주치기를 무서워했고 대화를 기피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연말 몇 달을 혼자 시간을 보내며 업무와 일상으로부터 멀어졌다. 도피나 잠수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신건강 서비스에 참여하며 개인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제적이면서도 심적 부담 줄여주는 그룹상담 '사담'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안암골 호랑이 CEO가 피봇팅한 이유[유니밸리]
사담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집단상담을 벤치마킹했다. 상담 주제별로 그룹화한 뒤 전문 상담사와 매칭한다. ZOOM을 활용한 비대면·익명 상담이 진행되며 코로나19 안정기 때는 오프라인 그룹상담도 추진할 계획이다.

오 대표는 "우리나라는 정신 관련 상담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직접 상담을 받아보니 심리상담이 더욱 경제적이면서도 참여자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상담이 부담스럽다면 사담이 있다"며 "사담은 그룹화를 통해 4주간 진행되는 평균 비용을 일반적인 일대일 상담의 1회 수준으로 낮췄고 가급적 같은 연령대 같은 성별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친구한테는 절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지만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는 민낯을 보여줄 수 있다. 서로 신원을 공유하지 않고 익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안암골 호랑이 CEO가 피봇팅한 이유[유니밸리]
현재 사담의 주요 이용자는 3040세대 여성이다. 육아·이혼·임신 등 공통된 고민을 나누며 서로 힐링을 주고받는다. 오 대표는 "우울증 치료 같은 의료적 효과가 아니더라도 '당신도 힘들구나'라는 공감을 통해 밝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한 이용자는 사담 후기에서 "아이의 삶을 보조하는 도구로만 존재하게 된 처지가 비참했다"며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고 나조차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첫 회차가 끝난 그날 오랜만에 푹 단잠을 잤다"고 밝혔다.

사담에 참여하는 전문가는 온라인을 통해 시·공간 제약 없이 상담할 수 있어 기존 업을 유지하면서도 부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 대표는 재외국민·취업준비생 등 이용자층을 확대해 매월 30~40개의 그룹상담을 운영한다는 목표다.

국내 멘탈 헬스케어 시장 개척…"우선 내실화 집중"

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오정민 히든트랙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고려대 산업정보디자인학과 13학번인 오 대표는 재학 중 히든트랙을 설립했다. 회사 이름은 학교 인근 수제 맥주집에서 따왔다. 이용자는 줄었지만 잠재력이 있는 린더와 사담을 병행하며 건강한 성장 기반을 만들어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사담을 통해 아직 시장구조가 자리 잡지 않은 국내 멘탈 헬스케어 분야를 개척해 나간다는 목표다. 오 대표는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 벤처캐피탈(VC) 등과 연계해 각사 고객이나 포트폴리오사에 대한 심리상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용자를 늘리기에 앞서 내실을 갖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상담은 최소 3번 이상 진행돼야 필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장점과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사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