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워런 앨퍼트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1.07.13 04:22
글자크기
김화진 /사진=김화진김화진 /사진=김화진


미국 브라운(Brown)대학교는 1764년 설립됐다. 학교의 현재 이름은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브라운 패밀리 이름을 딴 것이다. 브라운은 무역업으로 큰 부를 쌓았다. 1803년 5000달러를 기부하는 사람의 이름을 학교에 붙이겠다고 공고가 났는데 브라운은 당시로는 천문학적 금액인 16만달러를 기부했다.

브라운대는 1811년 의대를 개설했는데 하버드대학교(1782년)와 다트머스대학교(1797년)에 이어 뉴잉글랜드 지역 세 번째였다.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8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827년 중단됐다가 1972년 재개됐다. 대학병원은 없고 8개 지역병원과 연계돼 있다. 모두 대학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브라운대 의대는 이름이 앨퍼트의대다. 기업인 워런 앨퍼트(Warren Alpert, 1920~2007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앨퍼트는 리투아니아 이민자 출신이다. 다섯 남매의 막내였는데 부모가 잡화행상을 하면서 키웠다. 앨퍼트도 13세부터 부친의 장사를 도왔다. 고등학교 때도 방과 후 장사를 했다. 보스턴대학교를 고학으로 졸업했다. 1주일 내내 일했다고 한다. 1942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여했다. 오마하비치에서 부상을 입었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전쟁 후에는 군의 지원으로 하버드대학교 경영대에 진학해 1947년 졸업했다.

스탠더드오일에서 몇 년 일한 후 1950년에 중고차 1대와 저축한 돈 1000달러, 형에게 빌린 9000달러로 사업을 시작했다. 잡화, 석유, 식품, 담배 도소매업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엑스트라마트라는 이름의 체인점인데 250개 넘었다. 앨퍼트 타계 시 20억달러 매출 규모의 사업이었다.



앨퍼트는 소탈한 성격에 매우 검소했다고 한다. 미국 부자들이 흔히 하는 요트나 전용기는 물론이고 운전기사를 둔 적도 없다. 앨퍼트는 결혼을 하지 않아 후손이 없다. 평생 힘들여 쌓은 부를 다양하게 사회에 환원했다.

1974년 보스턴대에 공원을 조성하는 기금을 냈다. 하버드대 경영대도 지원했다. 1989년에는 프로비던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했는데 공중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목적을 정했다. 재단은 하버드대 의대와 공동으로 의학상도 제정했다. 국적과 국가에 관계없이 매년 의학연구에 탁월한 업적이 있는 개인이나 팀에게 50만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제1회 수상자는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의 분자생물학자이자 바이오젠 공동창업자 케네스 머레이 교수다.

1993년에는 하버드대 의대에 2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암, 치매, 에이즈 치료에 사용해달라고 당부했다. 하버드대를 선정한 이유는 목적의 달성에 가장 가깝게 있다고 보아서다. 2000년에는 자신이 나중에 영면하는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에 1500만달러를 기부했다. 앨퍼트는 타계하기 5주 전 브라운대에 1억달러를 기부했다. 브라운대 의대 이름이 앨퍼트의대인 이유다. 앨퍼트는 브라운대가 있는 프로비던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했다. 1억달러는 브라운대 역사에서 최대 기부고 앨퍼트는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지역사회의 의료와 차세대 교육을 위해 그렇게 부를 환원하고 돌아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