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제는 동·식물 전염병 연구 인프라 갖출 때

머니투데이 고영진 국립순천대학교 총장 2021.07.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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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가 더욱 불편해지는 계절이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두 번의 여름을 마스크를 쓴 채 보내게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1년 반째 사투를 벌이고 있다. 계속되는 바이러스 변이로 펜데믹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펜데믹이 특정 분야의 성장을 촉발한 것도 사실이다. 비대면 문화(언택트)와 온라인 활동(온택트)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디지털 전환 속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들이 급성장했으며, 무엇보다 전염병 치료제와 백신 개발 역량이 폭발적으로 향상됐다.



이 기세를 몰아 인간 전염병을 넘어 동·식물 전염병으로 관심을 넓혀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동·식물 전염병은 경제·사회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19세기 중반 약 100만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아일랜드 대기근은 감자 역병에서 시작됐고, 19세기 말 발생한 우역(牛疫)은 아프리카 사회를 붕괴시켜 식민지화를 가속화했다.

지금도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과수 화상병,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대표적이다. 2015년 국내에서 발병해 확산중인 과수 화상병은 식물 흑사병으로 불릴만큼 전염성이 높고 피해가 심각하다. 이에 정부는 발병 농가의 과수를 모두 매몰처리하고 3년간 과수 재배를 금지하는 극단적인 확산 방지책을 추진중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역시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 전염병으로, 약 330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던 구제역 사태가 언제 재현될지 모른다.



다행히 탄탄한 검역·방역 체계 덕분에 이들 전염병이 급격히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백신·치료제가 없어 예방에 실패할 경우 확산방지를 위한 살처분·공적방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또 메르스, 코로나19 등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가 보여준 것처럼 변이를 통해 언제든 더 심각하게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며, 그러려면 위험이 상당한 병원체도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는 생물안전 3등급(BL3, Biosafety Level 3) 수준의 밀폐형 동·식물 전염병 전문 연구시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는 이같은 연구 인프라가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5월 정부가 '공용 3등급 동·식물 감염병 연구시설 구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 다(多)소재 취급 BL3 연구시설을 구축하고, 이를 산·학·연의 다양한 수요자가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획중인 공용 환경위해 BL3 연구시설이 구축되면 그동안 아이디어는 있지만, 연구 환경의 제약으로 고위험 동·식물 감염병 연구를 하지 못했던 연구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동·식물 전염병 백신·치료제의 허브로 도약하고, 농·축산업 전염병 대응 역량을 키워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영진 국립순천대학교 총장고영진 국립순천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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